여름이 싫다. 천성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는 많이 더위를 탄다. 이런 나에게는 8월의 뙤약볕이 아닌 바로 요즘이 가장 지내기 어렵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이 과도기적 시기가 나에게는 고역이다. 애매한 시기기 때문에 실내에서든 차내에서든 에어컨을 켜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무더운 날씨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에어컨을 켜고 선풍기를 돌리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이중창과 두꺼운 커튼, 두꺼운 쇠문을 갖춘 폐쇄적인 강의실은 나에게 너무나 더운 곳이다. 그 폐쇄적인 공간에 몇 십 명의 학생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난다. 하루는 견딜 수가 없도록 더웠다. 땀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고 온몸에서 땀이 주르륵 흐르는데도 강의실 안에 앚아있는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 평온해보였다. 아무도 두꺼운 커튼에 덮혀있는 창문을 열 생각도, 그렇다고 에어컨을 켤 생각을 하지 않는 듯 했다. 더운 열기가 이글거리는데도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보였다. 결국, 혼자 강의실을 나가버렸다.

노회찬 의원이 텔레비전에 나와 이야기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당시에는 이승만 정권의 독재가 막바지를 달리던 때였다고 한다. 그 때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를 일삼는 등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처럼 도저히 이해가 갈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이에 대해서 이상하게 여기기는커녕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소처럼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말도 안되는 협상을 졸속으로 벌여놓고도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연일 계속되는 촛불집회와 들끓는 민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방안 하나 내놓지 않고 있는 정부다. 그 것도 모자라 북파공작원 위령제라는 당치도 않은 구실로 촛불집회를 방해하고, 뜬금없이 보수층을 결집시키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뭔가 잘못돌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평소와 아무런 변화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도 일부의 사람들은 손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면서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 이상 학생들만이 아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줌마들부터 온가족을 이끌고 온 샐러리맨부터 학교에서 나와 거리로 나온 중고등학생들까지. 참여의 폭은 넓어졌다. 그리고 스스로 참여를 즐기고 있다. 더 이상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시위는 볼 수 없다. 촛불을 들고, 끼리끼리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386들은 막거리를 나누고, 연인들은 데이트를 하러 온다. 새롭다.

물론 아직까지도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에 무관심하고, 혹은 시간이 없어서, 용기가 없어서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청계광장이든 시청 앞이든 인터넷이든 정부의 잘못된 발걸음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하나둘 늘어만 가고 있다. 아직까지도 별다른 대책을 강구하지 못한 정부가 단지 시간을 떼우려는 것인지, 아니면 신중하게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불어나는 시민들의 참여가 있기에 미래는 밝다. 기대해본다. 더군다나 우리는 6월 10일의 기억도 잊지 않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