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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낯설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평소에 낯익었던 것을 떠나서, 생전 와보지 않은 곳에 가보고 생전 해보지 않은 것을 실감한다. 사실 우리는 '낯익은 것'들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갖지 못한다. 매일 엄마가 차려주시는 밥을 새삼스럽게 맛있게 느끼진 않는다. 설레게 했던 애인도 세월이 지나 낯익은 사이가 되면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새옷은 유난히 이뻐보이지만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왠지 모르게 식상해보인다. 불륜과도 같다. 식상해진 일상이라는 배우자를 잠깐 잊고 여행이라는 달콤한 애인과의 밀애를 즐기는 것이다. 애인마저 식상해지면 다시금 현모양처에게로 돌아오는 드라마 속 남편들처럼 여행도 주위의 것들에 무덤덤해질만 하면 집으로 돌아온다.

이처럼 여행의 맛은 '낯선 것'에서부터 온다. 하지만 이 낯선 존재들, 우리가 평소 경험해보지 못한, 익숙치 않은 대상들이기에 당연히 막연한 두려움이 앞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처음 경험해보는 것에 대해 두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낯선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다. 그것은 용기있는 것도, 용감한 것도 아니다. 그저 무모할 뿐이다.

사람들이 처음 어떤 것을 경험해볼 때, 예를 들어 대학교를 입학할 때의 기분. 한 마디로 묘한 기분이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삶에 대해 설레는 동시에 과거 해보지 못한 것들을 해내야하는 걱정 또한 앞선다. 하지만 이 때의 걱정은 절망스러운 걱정과는 다르다. 망친 시험 성적을 부모님께 내밀어야 하는 고등학생의 걱정이나, 몸이 아픈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를 보면서 드는 걱정스런 마음과는 다르다. 어떤 표현이 적합할지는 모르겠지만 짧게 말하자면 '설레는 걱정'이라고 해야 할까. 왜 '기대 반 걱정 반'이란 표현이 있는 것처럼. 여행을 앞둔 '설레는 걱정'은 즐기기에도 벅찬 행복일 뿐이다.


#1
알람에 눈을 떴다. 알람을 끄고, 한동안 그대로 누워있었다. 긴장감이 몰려왔다. 아주 잠깐, 후회를 하기도 했다. 너무 무모한 것 아닌가.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 비행기에 오르기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하지만, 막상 비행기에 오르고 작은 창문으로 공항의 모습이 점점 깨알만해질수록 가졌던 두려움, 초조함, 걱정들도 모두 깨알만해졌다. 곧 창문으로 보이는 흰 구름들처럼 두리두둥실 설레는 마음 뿐.

#2
길을 잃을 경우를 대비해서 나침반을, 음식이 안맞아 배탈이 날 상황을 대비해서 지사제를, 감기에 걸릴걸 생각해서 감기약을, 자는 사이에 누가 가방을 가져갈까봐 자물쇠와 체인을 준비했는데, 모두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채, 오히려 여행하는 동안 짐만 되고, 고스란히 집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3
처음에는 큰 덩치와 파란 눈의 현지 백인들이 낯설고 무서웠다. 내가 동양인인 것을 보고 괜히 해꼬지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머릿 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런데 하루이틀 지나면서 그들이 오히려 나를 무서워하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낯선 동양인 이방인을 두려워했다. 자기들과 다르게 검은 눈과 검은 머리를 한 남자가 갑자기 다가와서 'Excuse me'를 외치는 것을 보고는 큰 덩치는 어디에 쓰는지 손사레를 치며 두려운 눈빛으로 뒷걸음질 할 뿐이었다.

#4
처음에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공항에 보이던 수많은 사람들이 내 눈에는 모두 소매치기들로 보였다. 강렬한 눈빛으로 주위의 모든 현지인들을 견제하면서 배낭을 꽉 쥐고 다녔다. 그런데 여행이 끝날 때 즈음에는 '우리나라 사람들 호들갑은 알아줘야 하는군. 도대체 어디 소매치기가 있다는거야'라고 생각할 정도로 긴장이 풀렸고, 결국 참사를 당했다.

하지만 어이 없는 소매치기에 눈물을 흘릴 뻔한 것도 잠시. 더 웃겼던 것은, 바로 그날 밤, 민박집에서 남녀혼숙을 하게 되면서 같은 방을 썼던 누나들과 밤새 천장 보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깔깔깔 대화를 나누면서, 나의 슬프디 슬펐던 소매치기 사건은 어느새 그저 웃기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어있었던 것. 그것도 내 입으로, 내가 깔깔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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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의 행복에 떨려하는 소중한 친구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