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부터인가 '뉴라이트'란 말이 세간에 떠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곧 온갖 방송들과 신문들의 지면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럴만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정권교체가 처음으로 이루어지고, 뭔가 새로운 것들을 해줄 것만 같았던 젊은 386 세대들이 정치의 중심에 대거 합류했다. 정치계에서도 혁신의 바람이 부는 듯 했다. 그러자 이와는 반대로 보수 정치세력과 언론들은 점차 '수구꼴통'의 이미지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대선에서의 잇달은 패배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보수세력에게는 뭔가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리고 '뉴라이트'는 그런 그들의 새로운 카드였다.

'뉴라이트'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우선 기존의 '수구세력'과는 거리를 두려 애썼다. 같은 보수적 색채를 띄고 있지만 '뉴라이트'는 같은 보수 속에서도 혁신과 개혁을 추구했다. 정형근 전 의원과 같은 인물로 대표되는 독재정권으로부터 뿌리를 두고 있던 '구보수'세력과는 차이를 두려 했다. 보수진영의 발목을 잡고 있던 어두웠던 과거 시절로부터 탈피하고, 대중들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도세력을 흡수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의 새로운 보수의 주류적 흐름이 되고자 한 것이다.

그들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가 연달아 집권함에 따라 왼쪽으로 무너진 사회의 균형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운동권 세력의 성장, 노조의 영향력 확장, 국가 보안 기강의 해이, 효용적이지 못한 경제 규제 등을 문제 삼고 이는 현 우리 사회의 위기적 상황이라 진단했다. 그리고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유주의적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뉴라이트'가 사회로의 직접적인 영향력 행사를 실행해야만 한다는 논리였다. 1980년대 영미권에서 처음 발생했던 '뉴라이트'의 움직임은 신자유주의의 출현으로부터 그리 자연스럽지 못하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했던 비유대로 '빵'보다는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동시에 '뉴라이트'의 본질적인 인식이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실 최근 몇 년 간 국내에서 일었던 '뉴라이트'의 열풍은 설득력있어 보였다. '빵'에 중점을 두었던 지난 십 년 간의 정권에 비해 이제는 '자유'에 더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그럴싸했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지난 몇 년 간의 '뉴라이트'는 결과론적으로 성공적이었다. 무엇보다 10년만에 정권을 다시 되찾아왔다. '뉴라이트'가 전면으로 부각되었던 지난 대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들이 내세운 후보는 보수진영의 대표적 모델인 산업화세력이었지만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실력'이 입증된 기업인 출신이었고, 이런 기업인 출신 대선 후보라는 점은 '뉴라이트'와 얼버무려져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의 참신한 인물로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최근 '뉴라이트'의 행보는 새로운 보수의 흐름으로서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매우 실망스러워져 가고 있다. 얼마 전 또 다시 붉어진 독도 문제로 현 정권이 일본의 우경화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사실 우경화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 현 정권 자신도 그리 자유롭지 못한 것은 별 차이가 없다. 본래 기존의 구보수세력과는 차별을 두려 애쓴 그들이지만 정권을 잡은 후로 그들의 정치 방식과 국정 운영책은 구보수세력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뉴라이트'의 기조 아래 우선적으로 그들이 사회의 균형을 다시 되찾고자 벌인 사업은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이었다. 노무현 정권 때 잡음을 냈던 대미관계를 다시 그 이전의 상태로 완벽 복원하는 것이 '뉴라이트'가 말하는 사회의 균형 잡기의 첫 걸음이라 여겼을까, 냉철한 시각에서 보더라도 미국에게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하는 졸속 협상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고자 했고, 이는 곧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던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 후, 기나긴 촛불의 행진으로 정부는 어렵게나마 미국과의 재협상을 재개시키고, 국민들과도 어느 정도의 협상점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차 촛불 집회에 대한 여론이 예전만 못하게 되자, 그들은 촛불 집회를 반격의 계기로 삼아 급진적인 진보 진영을 몰아세우기 시작했고, 굳건한 공권력 앞에 무너진 진보연대와 같은 진보 진영은 군사 정권 이후 처음으로 '탄압'과도 같은 '탄압'을 받아야만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언론을 장악하고자 하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장을 차지하더니, YTN의 사장 자리 또한 직원들의 반대 등 여러 잡음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차지하였고, '뉴라이트'의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였던 KBS 정연주 사장도 끝내 해임시켜버렸다. 정치 검찰도 부활시키는 듯 하다. 대선까지 나왔던 야권의 유력 국회의원이 체포 직전까지의 상황에 몰렸다. 그들이 외치는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와는 정반대의 길이었다. 외면적으로는 구보수세력과의 차별을 강조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구보수세력과 구보수세력이 사용했던 방법론적인 방식을 똑같이 차용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네오콘'과도 비교되고 있는 지금의 '뉴라이트'의 현실이다.

건국일을 따로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과거의 수구 세력과는 그토록 차별을 두고 싶어 했던 '뉴라이트'세력이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과거 수구 세력의 전통성을 기념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더 이상 '뉴라이트'가 아니다. 말만 번지르르한 '뉴라이트', 새로운 혁신적 보수주의,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일 뿐 그저 몇 십 년 전 과거와 다를 바 없는 수구세력의 연장선이다.

올림픽이 한창이다. 올림픽에서의 우리나라 선수의 선전, 그리고 금메달 획득은 그 어떤 때보다도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통쾌하게 만든다. 우리 선수가 금메달을 딸수록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올림픽 스타들도, 스폰 기업들도 아니다. 바로 현 정권이다. 금메달이 하나 둘 늘어나고 우리나라가 선전할수록 현 정권의 지지도 또한 동반 상승하고 있단다. 물론 본의는 아니겠지만, 올림픽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고 있는 현 정권을 보면서, 이십 여 년 전 우리나라가 떠오르는 것은 비단 유쾌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