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열린 2008-2009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7라운드, 스토크 시티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
한 마디로, 그 어느 경기보다 박지성의 부재가 여실히 느껴지는 경기였다.


클럽월드컵으로 일본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고 박싱데이로 촘촘한 경기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예상대로 맨유는 평소의 스타팅 멤버와는 조금 다른 1.5군의 선수들로 선발진을 구성했다. 루니, 테베즈의 투톱에 호날두와 긱스를 양쪽 측면에 최근 복귀한 스콜스와 플레쳐를 중원으로, 올시즌 보기 힘들었던 네빌과 오셔, 비디치, 에반스, 그리고 반데사르가 선발 출전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보여온 맨유 공격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포지션 파괴'다. 상대편은 이를 알고도 매 번 당하기만 한다. 작년 시즌 맨유가 대량 득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루니, 테베즈, 호날두, 박지성의 왕성한 활동량 때문이었다. 쉴틈없이 뛰어대고 쉴틈없이 위치를 변경하며 쉴틈없이 빈공간을 침투했다. 어느 한 선수 빼놓지 않고 모두 끊임없이 활발하게 움직이며 수비수들을 괴롭혔다. 때문에 대부분의 상대편 수비수들이 이들의 활동량을 따라잡지 못했고 이는 곳 맨유의 득점으로 이어졌다. 올시즌들어 호날두가 부상 여파로 고전하고 베르바토프가 들어오면서 저번 시즌의 모습은 보여지지 않고 있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포지션 파괴'는 아직 맨유 공격의 주요 테마이다. 이는 클럽월드컵 결승전에서 보여줬던 맨유의 엄청난 공격력에서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제 경기에서는 이 맨유 공격의 주요 테마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루니, 호날두가 빡빡한 경기 일정 탓에 조금 피로해보였기도 했지만 가장 문제는 긱스였다. 오랜만에 제 포지션인 왼쪽 윙어로 출전한 긱스는 노쇠한 까닭이었는지 경기 내내 무기력한 모습만을 보여줬다. 역습 찬스에서는 매번 흐름을 끊기 일쑤였고 무엇보다 엉성한 활동력 탓에 오셔와 자리가 겹치는 일이 많았다. 이런 긱스의 부진은 스콜스와도 맞물려 있었다. 가끔씩 터지는 중거리슛과 침투패스는 그의 건재함을 알리는데 충분했지만 잦은 패스미스와 경기가 안 풀릴 때 링커로서 경기를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모습이 부족했던 점은 아쉬웠다. 물론 이런 스콜스의 부진은 긱스나 호날두의 윙어들이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은 탓에 공간이 부족했던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중앙 미드필더와 양측 윙어들은 서로의 경기력이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관계에 놓여있다. 어제 경기처럼 윙어가 부족한 움직임으로 공간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면 중앙 미드필더로서는 경기를 풀어나갈 옵션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윙어가 열심히 공간을 창출하고 빈공간, 수비 뒷 공간으로 홥발히 침투한다 하더라도 중원으로부터 정확한 패스를 받지 못하게 되면 윙어의 움직임 또한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양측 윙어들이 윙백들의 오버래핑시 커버를 해주지 않는다면 그 수비부담은 고스란히 중앙 미드필더들이 떠맡게 되면서 중원은 자꾸 밑으로 처질 수밖에 없어진다. 공격시에도 같은 허리라인으로서 서로 유기적으로 받쳐주지 못한다면 측면과 중원은 계속 고립되고 볼에 대한 점유율은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어제 경기는 이런 유기적인 움직임이 부족했다. 스토크시티의 밀집 수비 때문에 맨유 공격진은 계속 고립되기 일쑤였다. 계속되는 선수들의 고립에 스콜스-플레쳐의 중원 또한 볼 배급을 원활히 할 수 없어 고전했다. 때문에 루니나 테베즈, 호날두, 긱스의 공격진은 계속해서 중원으로 볼을 받으러 나올 수밖에 없었고 이는 다시금 최전방에 공격수의 숫자가 부족해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하였다. 역습을 당할 시에도 양 윙어들이 제대로 수비가담을 해주지 않은 탓에 그 수비부담을 고스란히 지게 된 스콜스-플레쳐의 중원 라인은 계속해서 밑으로 처지게 되었고 양 윙백들의 오버래핑 또한 자제되었다. 그리고 이는 또 다시 공격시 공격자원들의 고립으로 계속해서 반복되는 악순환을 낳았다.

이 악순환은 박지성의 부재에 따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호날두나 루니 같은 선수들이 체력적 부담으로 인해 활동량이 줄어든 탓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빈공간을 침투하면서 밀집되어있는 수비수들의 간격을 벌려주고 다른 공격수가 파고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수비수 뒷공간을 파고들어 상대편 포백 라인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상대편의 수비라인과 공격의 간극을 벌려놓게 되어 그만큼 맨유 공격진의 활동폭을 넓게 만들어 줄 선수도 없었다. 또 활발한 수비가담으로 윙백들이 부담없이 오버래핑을 시도하면서 공격 숫자를 늘릴 수 있는 움직임을 해줄 수 있는 선수 또한 없었다. 또한 긱스나 호날두처럼 잦은 드리블로 흐름을 뺏기는 것보다 박지성과 같이 논스톱으로 패스를 이어나가 빠르게 공격 전개를 할 수 있는 스타일이 밀집수비를 상대하기에는 더 적합했다.

축구는 농구나 배구와 달리 카메라가 그라운드의 모든 곳을 비춰주지 않는다. 때문에 중계방송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공을 잡고 있는 선수와 이를 수비하는 선수들의 정적인 움직임만이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중계방송 앵글의 이면에는 정말 끊임없고 치열한 자리 싸움, 공간 싸움이 벌어진다. 공을 잡고 화려하게 발재간을 부리는 호날두 같은 선수들이 중계방송 앵글에 비춰지는 그라운드의 주인공이라면 반대로 박지성과 같은 선수들은 앵글에 비춰지지 않는 그라운드의 주인공이다. 안 보이는 곳에서 한 걸음씩 더 움직여주면서 공격, 수비할 것 없이 항상 자기 편의 수적 우위를 만들어주고, 재치있는 움직임으로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공간을 만들어낸다. 바로 이런 움직임이 이번 스토크전에서 너무나도 절실했다.

물론 퍼거슨 감독 본인이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체력 안배 때문에 박지성을 투입시키기 않았을 것이다. 아마 바로 다음의 보로와의 경기에서는 박지성이 풀타임 출전할 가능성이 높다. 캐릭 또한 박지성과 같이 풀타임 출전할 것이다. 어제 경기에서 긱스와 스콜스의 조합이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저조한 경기력을 보였던 것과는 달리, 박지성과 캐릭의 조합이 얼만큼의 시너지를 내면서 확연히 다른 경기 내용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어제 경기, 비록 박지성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박지성의 진가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던 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