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 열렸던 잉글리쉬 프리미어 리그 21라운드 맨유:첼시

최고의 팀간 경기로 관심을 모았던 이 빅매치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긱스가 되었다.
최근 몇 차례 출전에서 상당히 노쇠한 움직임을 보여준 탓에 긱스의 선발 출전은 상당히 뜻밖이었다. 스콜스나 캐릭 같은 탄탄한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에 굳이 노쇠해진 긱스를 선발로 내보낼 까닭이 없었다. 퍼거슨 할부지가 드디어 노망이 드셨나 의아해 했지만 역시 퍼거슨 할부지의 안목을 어디 나 같은 일개 축구팬이 조금이라도 이해할 터가 있나. 긱스는 종횡무진하는 가운데서도 우아했다.

라이언 긱스,
한 때 최고의 선수로 명성을 누렸지만 어머니의 조국인 웨일즈 국적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단 한 번도 월드컵에 출전할 수 없었던 비운의 스타이기도 하다. 내가 중학생 때 처음 긱스를 알게 되었다. 케이블 방송에서인가 유럽 축구팀끼리의 경기를 중계해주는 것을 봤는데 그 경기에서 유독 돋보였던 그의 드리블에 나는 순식간에 매료되어버렸다. 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란 팀보다 긱스란 존재를 먼저 알게 되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개인기가 좋은' 선수들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스피드와 순발력으로 수비수를 제끼는 선수가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예전의 '날쌘돌이' 서정원 선수나 '플라잉 더치맨' 오베르마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요즘은 예전만 못하지만 리옹의 고부(Govou)나 앙리도 이에 속한다. 이들은 상대 수비수를 압도하는 스피드와 순발력으로 먼저 공을 치고 달린다. 조금은 단순할 수 있겠지만 오베르마스나 앙리와 같이 폭발적인 스피드로 점점 수비수들과의 격차를 넓혀나간다. 어찌보면 수비수 입장에서는 알고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가장 부담스러운 스타일이기도 하다.



둘째, 상대 수비수를 페인팅으로 속이는 선수가 있다.
일명 '헛다리 짚기'를 잘하는 선수들이다. 이들은 수비수에게 끊임없이 '사기'를 친다. 브라질의 호나우두 선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의 현란한 헛다리 짚기는 너무 리얼한 탓에 중계카메라마저 움찔움찔거리게 만든다. 이쪽으로 가는 척하면서 저쪽으로 가버리는 페인팅 단 한 방에 수비수들은 걸음을 멈추어버린다. 지단도 수비수를 속이는 드리블을 잘했다. 공을 세우면서 드리블을 멈추는가 싶더니 하고 생각하는 순간 어느새 다른 발로 공을 치고 나가 수비수의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아버린다. 한 쪽으로 가는 척하다가 발목만 비틀어서 방향을 바꾸는 플리프랩 기술을 잘 썼던 피구나 호나우지뉴도 여기의 범주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셋째, 수비수의 순간순간 움직임에 반응하며 드리블을 하는 선수가 있다.
상당한 내공을 지닌 선수들의 드리블이다. 화려한 헛다리 짚기나 폭발적인 스피드는 없지만 아주 간결하면서도 확실하게 수비수를 제껴낸다. 이들은 수비수의 움직임을 기다린다. 그리고 수비수가 공을 뺏으러 움직이는 바로 그 찰나에 수비수의 움직임을 역이용하여 타이밍을 뺏는다. 톡톡 공을 치며 수비수들 사이를 요리조리 휘집고 다닌다. 메시나 마라도나와 같은 스타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영표 선수 정도? 이영표 선수는 일대일 드리블 돌파할 때 시선을 수비수의 발에 고정시킨다. 그리고 그 수비수 발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수비수를 순간적으로 제껴버린다. 수비수의 양발 사이가 좀 넓다 싶으면 가랭이 사이로 공을 치고 나가기도 한다.



넷째, 방향 전환을 통해 수비수의 허리를 옆으로 꺾어버리는 선수가 있다.
뭔말인가 하면, 주로 하키 선수들이 드리블을 할 때 스틱으로 쉴새없이 퍽을 좌우로 흔드는 것과 같이 좌우로 공을 드리블하면서 어느 순간 수비수의 리듬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다. 좌우전환을 하다가 수비수의 리듬과 타이밍을 빼앗아버리면 어느 순간 수비수의 몸은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데 반대로 머리는 공과 공격수를 따라 왼쪽을 보게 되는, 허리가 뒤틀어져버리는 순간이 온다. 옛날 K리그 수원과 성남에서 뛰었던 러시아 용병(나중에는 귀화했다) 데니스 선수나 아르옌 로번 같은 선수들이 이에 속하지 않나 싶다.

 


이중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드리블은 네번째 드리블이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긱스에게는 이 드리블이 전매특허였다. 98-99 FA 컵대회에서 나왔던 '매직 드리블'도 바로 이런 류의 드리블이었다. 수비수들은 그를 따라가려다가 어느 순간 허리가 뒤틀려지고 맥없이 방향을 잃어버린다.

물론 어제 경기에서와 같이 가끔씩 회춘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이제는 은퇴를 바라봐야 할 나이가 된 탓에 이런 멋진 드리블을 다시 보기는 힘들테다. 하지만 조던의 에어워크도, 선동렬의 강속구도, 홍명보의 주장완장도 모두 그렇듯 계속 볼 수 없기에 더욱 값진 것처럼 긱스의 너무나도 멋있고 훌륭했던 드리블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