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복덕방에 가지 않고도 땅값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해당 지역 고등학교의 대입 성적 수준을 알아보는 것이다. 근처에 외고나 과고가 있다면 말할 것도 없고, 일반고라도 다른 학교들에 비해 매년 대입 성적이 월등한 학교가 있다면 그 지역은 십중팔구 다른 지역에 비해 땅값이 높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각 지역마다 특목고를 설립하고자 하는 열망은 뉴타운 못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땅값 올리기에 '대입 명문고' 만한 특효도 또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고려대가 2009학년도 수시 전형에서 고교등급제를 적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1~2등급의 내신성적을 받은 학생은 불합격하고, 5~6등급의 내신성적을 받은 학생은 합격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알고 보니 두 학생의 차이는 출신 학교에 있었다. 좋은 성적이었음에도 떨어진 학생은 일반고교에 다니고 있었고, 좋지 않은 성적이었음에도 합격한 학생은 특목고생이었다.

공식적으로 고교등급제는 금지되어있다. 하지만 선발 전형은 대학들의 자율이기 때문에 내부의 구체적인 신입생 선발 기준을 알 수 없는 현실인 이상 고교등급제 적용에 대한 논란은 쉽사리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사실, 암묵적으로는 고교등급제를 금지하는 '3불 정책'이 시행된 이후에도 과거에 비해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학에서 내부적으로 고교등급제를 적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대학이나 고등학교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돌고 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도 담임 선생님들이 고교등급제를 고려하여 학생의 수시 전형 접수를 추천할 정도였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교육, 특히 대입과 관련된 문제들은 상당히 어렵고 복잡하다.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는다. 이번 논란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번 고려대의 수시 전형 논란이 입시 사고인가 아닌가에 대한 의혹은 쉽사리 알 수 없겠지만, 설령 고려대가 은밀히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 하더라도 분명 고려대가 잘못을 하긴 했지만 이를 고려대만의 잘못이라 치부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고교등급제는 대학 입장에서는 포기하기 어려운 기준이다. 학교별 수준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 내신만으로 학생을 선발해야 하는 수시 전형에서 고교등급제 외에는 이런 학교별 수준 차이를 측정할 방법이 없다. 인정하긴 싫지만 시골지방의 한 고등학교에서 1등을 하는 학생이 강남 8학군 고등학교에서 10등을 하는 학생보다 반드시 학업성취도가 높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작금의 현실이다.

노무현 정부는 어떻게든 강남의 명문 학군을 와해시키고자 했다. 그래야만 강남을 중심으로 형성된 현 우리 사회의 '교육 세습'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고교등급제 금지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물론 그 취지나 의도는 훌륭했다. 하지만 그 정책의 추진이 다소 현실과는 유리되는 면이 없지 않았다. 이미 강남에 편중되어있는 고교별 수준 차이를 고교등급제로 완화시키고자 했던 것은 무리한 수순이었다. 바뀐 정책에 따라 강남에서 비강남 학교로 전학을 가는 학생들이 일부 나오기는 했지만 이는 극히 일부였을 뿐이었고 강남에 집중된 명문고, 명문 입시학원은 건재했다. 고교등급제 금지에 대한 안일한 믿음 덕택에 비강남 지역의 고등학교의 수준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사교육의 열기만 고조되고 대학이 내신 성적을 불신하는 역풍을 맞았다.

고교등급제 금지와 사교육비 감소는 분명 동시에 실행되어야 함을 전제하고 있는 과제이지만, 사실상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강남을 중심으로 형성된 과도한 사교육 열풍을 잡고자 했다면 고교등급제를 폐지하는 방법보다는 각 지역의 고등학교 수준을 높이는, 다시 말해 공교육의 입지를 되찾는 방향으로 정책을 잡아야 했다. 이런 작업이 마련되지도 않은 채 고교등급제 폐지만을 밀어붙인 덕택에 강남권을 제외한 다른 고등학교의 교육 수준은 떨어질대로 떨어지고 사교육 부담은 가중되고 대학은 대학대로 남몰래 고교등급제를 적용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누구인가? 지방에서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일반고 학생들이다.

강남 학군의 본질적인 문제는 학원가에 있다. 강남에 사람들이 몰리고 명문 고등학교가 형성되는 것은 강남의 사교육 시장 때문이다. 먼저 사교육 시장을 잡아야만 고교등급제 폐지와 같은 정책이 유효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현실적 방안들이 중요하다. 실력이 좋은 학생들은 그들대로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또 이들 수준에 따라 학교가 학원 못지 않은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한다면 학생들이 낮에는 학교에서 졸고 밤에는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피곤한 짓을 굳이 반복해야 할 이유가 없다.

고교등급제 폐지와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없는 이상,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간구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무조건적인 고교등급제 금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금과 같은 고교등급제 금지 정책은 허구일 뿐이다. 지금의 일반고 학교들은 고교등급제 금지만을 믿고 안일한 태도만 취하고 있을 뿐, 자가적인 교육 서비스 향상을 위해 사교육을 줄이려는 노력은 전혀 들이지 않고 있다. 학교와 교육당국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