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가 열 번 온다고 한들, 우리나라 경제는 망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구요? 사교육 시장 때문에 항상 어마어마한 현금이 돌거든요."

조그만 땅덩어리에 5천만 명이 비좁게 부대끼며 살고 있는 우리나라. 여기에 유교에서 내려온 '입신양명'의 허울까지 더해 정말 다른 나라와는 비교도 안 될 교육열을 갖고 있다. 거기다가 명문대를 위주로 형성된 뿌리 깊은 학벌 사회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맹목적으로 공부할 것을 강요하기에 충분하다. 사농공상에 대한 귀천은 그 엄격한 신분차별만 사라졌을 뿐 지금까지도 명목을 이어오고 있고, 점점 벌어지고 있는 빈부격차에 학력은 서민들의 마지막 등용문이 되어가고 있다.

이처럼 높은 교육열, 치열한 학업 경쟁은 우리 사회에서 쉽사리 사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교육에서 경쟁은 어느 나라든 치열하다. 중국, 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영국, 미국, 이스라엘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치열한 경쟁은 어느 곳이든 존재한다. 특히 바로 옆 일본은 아직까지도 우리나라가 금지하고 있는 본고사를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즉, 학생들끼리의 치열한 경쟁은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교육열이 엉뚱한 사교육으로 집중되어 있는 데 문제가 있다. 어느새부터인가 중등교육은 학교보다는 학원이 이끌게 되었다. 학생들은 학교보다는 학원에 의지하게 되었고, 학교는 학생들이 저녁에 학원을 가기 전에 잠깐 조는 곳 정도로 여겨지게 되었다. 강남에는 유명 학원가가 형성되었고 곧바로 부유층 자제들이 몰리는 사교육 1번가가 되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의 성적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더 이상 학교가 아닌 학원이었다. 이번에 공개된 평가 결과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지역도 역시 강남교육청이었다. 삐까번쩍한 학원가를 떠올리면 그리 놀라운 결과도 아니다.

물론 여러 가지 부작용이야 불가피하겠지만 이번 평가 결과 공개를 통해 사교육 시장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만큼은 눈 여겨 볼 만 하다. 그동안 사교육 시장이 성장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보다 공교육이 부실했던 탓이었다. 대입 전형에서 내신의 비중이 커지면서 각 학교들은 본교 학생들이 좋은 내신 성적을 낼 수 있도록 학교 시험 수준을 대폭 낮추었다. 수업의 질 또한 낮아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기시험에서 평균 90점이 넘는 학생이 절반이 넘는 학교가 수두룩했던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수능 공부와 학교 수업은 점점 수준 차이가 날수밖에 없었고 학생들은 이를 메우기 위해 저녁마다 학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각 지역교육청별로, 작게는 각 학교별로 평가 결과가 공개되면서 앞으로 각 학교는 학생들의 학업 성적에 대해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당장, 각 지역교육청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는 학교의 학교장에 여러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별도의 보충 수업을 해주고, 실력이 우수한 학생들은 또 이들에 맞도록 수준 있는 수업을 해주는 등 각 학교별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높이기 위한 갖가지 방안들을 강구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강남과 비강남의 학력 편차가 굉장히 크지만, 8,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서울에서 이런 학력 편차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처럼 강남에 학원가들이 몰려있는 대신 각 지역별로 명문학교가 자리잡고 있었고, 이 학교들을 중심으로 각 학교마다 매년 수능과 학력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학생들에게 타이트한 수업을 했다. 학생들은 따로 학원에 갈 필요가 없었고, 적어도 지금의 강남이나 목동처럼 한 곳으로 학원가가 집중되어 학력이 편중되는 일도 없었다.

교육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더더욱 그렇다. 각 학교들은 시쳇말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 평가 결과 공개로 각 학교나 지역의 경쟁은 불가피해졌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나태했던 학교들은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학생들의 입맛에 맞는 풍부한 수업을 제공하려 노력해야 하고, 학생들의 성적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마련해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팽배해진 사교육 시장을 줄이고 사교육비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으며, 강남이나 서울에 편중된 학력 격차를 줄일 수 있다. 또 사는 지역에 상관없이 누구든 열심히 공부만 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만 공부하고 자유롭게 나가서 뛰어놀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과 공부보다는 다양한 인성교육, 체험교육이 우선시되는 교육, 일부 사람들이 노래하는 '참교육'이다. 말만 들어도 좋다. 어느 누가 이런 교육을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로 현실은 시궁창일 뿐이다. 참교육 운운하며 학교 시험 없애고 수업 시간 줄이면서 모두가 경쟁 없는 교육에 대한 헛된 꿈을 꾸고 있을 때, 강남의 부유층 자제들은 밤새 학원을 다니며 새로운 학벌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공교육이 살아나야 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학교들은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질 좋은 수업을 제공해야 한다. 그 길만이 어느 학생이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