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콜드패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씼을 수 있었던 어제 WBC 일본전.
무엇보다 기분 좋았던 것은 일본에게 단 한 점도 허용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덕분에 도쿄돔을 가득 채운 수만의 일본 관중들은 9회말 내내 희망고문만을 당한 채 단 한 점 차의 패배를 직접 지켜봐야만 했다. 보리 보리 쌀 게임이 떠올랐던 경기. 매번 일본은 우리나라의 주먹을 덥썩 잡았지만 이를 약올리기라도 하듯 아홉번 내내 우리나라는 '보리' '보리'를 반복할 뿐이었다.

꿈틀꿈틀 뱀직구로 동료이자 일본 최고 타자인 아오키를 물러세웠던 임창용도 제대로였고, 150km의 묵직한 직구로 일본 타자들을 허둥거리게 만들었던 정현욱도 기가 막혔다. 체구 탓인지 주루사를 남발하긴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 한 방을 터뜨려주었던 김태균도 역시 해결사다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인 수훈을 해준 것은 바로 봉중근.

일본이 지난 1년간 김광현의 슬라이더'만'을 파고들어서였는지 봉중근의 묵직한 직구, 절묘한 체인지업에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노련한 경기 운영, 이치로의 발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빠른 1루 커버플레이, 뛰어난 견제능력 등 정말 보여줄 것은 다 보여줬다.

하지만 봉중근이 가장 멋있어 보였던 것은 바로 1회말이 아니었을까. 타석에는 이치로가 들어섰고 봉중근은 막 초구를 던지려 했다. 하지만 관중석에서의 플래쉬 세례 때문에 봉중근은 주심을 불러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 어깨를 툭 치며 농담을 나눌 정도로 여유를 부렸다. 덕분에 도쿄돔에는 카메라 플래시에 대한 주의 멘트가 전광판에 떴고, 봉중근이 웃으며 주심과 조크를 나눌 동안 메이저리거임에도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이치로는 영문도 모른 채 우둑커니 타석에 서 있어야만 했다. 이치로에게는 굴욕적인 순간. 봉중근은 '있어 보였고' 이치로는 '없어 보였다'.

4회말 보크를 범했을 때도 봉중근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작년 올림픽 결승 때, 포수 강민호가 어눌한 항의로 주심의 오해를 사서 퇴장 당했던 것과는 달리 봉중근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2루심과 직접 대화를 나누며 보크 판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무사 1,2루라는 실점 위기 속에서도 우리팀이 전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었다. '메이저리거의 여유란 저런 것이구나'를 느낄 수 있던 순간.

역시 영어는 잘하고 볼 일.
결론은 영어 공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