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도자는 자신만의 정치철학을 국정운영의 신념으로 삼는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권위주의 타파,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민주화와 화해,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문민정부'라는 타이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단호하고도 확고한 민주화 이행, 심지어 독재자란 평을 듣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도 그만의 뚜렷한 정치철학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정권에서 이명박, 그만의 정치철학을 찾기란 참 힘든 일이다.

물론 혹자는 '실용'이야말로 이명박의 국정철학이 아니겠냐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실용'이라는 것이 과연 현 정권이 담고 있는 진정한 색깔이라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과연 '실용'이라는 모토가 한 나라의 국정철학이라 할만 한 가치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앞선다.

물론 각 나라마다 각 사회마다 실용주의 노선이 갖는 의미는 조금씩 다를테지만 현 정권 초기에 이명박 스스로가 천명하였듯이 우리 사회에 있어 실용주의란 소모적인 좌우이념 갈등이나 지역 갈등에서 탈피하여 실용적인 정책 시행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정운영이라 할 수 있겠다. 한 마디로, 탁상공론의 좌우 이념적 대결을 타파하고 유용하고 쓸모있는 정책을 펴겠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어느새부터인가 현 정권, 혹은 대기업 중심의 재계와 보수언론들 사이에서는 '실용=우파정책', 다시 말해 실용은 곧 우파정책을 의미하고 반대로 좌파정책은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인식이 팽배해져 있다. 좌우 이념 대결에서 벗어났다기보다는 여전히 우파적 가치를 지향하면서 이를 실용주의란 이름으로 거짓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 정권은 우파정책에 입각해 신자유주의로 역행하고 있을 뿐 실용주의와는 거리가 먼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좌우 이념 대결의 타파는 실용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나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열기에 당황한 현 정권은 이들을 '배후'가 있는 단순한 '좌파'로 몰아세움으로써 오히려 좌우 대결을 조장하는 가운데 상황을 축소시키려 들고 있다. 지리한 좌우 대결에 이골이 난 듯 보였던 기업가 출신의 한 대통령이 정작 위기가 닥쳐오자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좌우 편 가르기'에 앞장선 것이다.

물론 실용주의가 국정철학이 될 수 있는 지, 그 자체의 문제에 대해서도 의문이지만, 무엇보다 현 정권은 스스로가 '실용주의' 타이틀을 포기했다. 경제 살리기와 성장이라는 큰 희망과 기대를 품고 출범했던 현 정권이 기득권과 좌우 대결에 얽매어있는 '우파정권'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