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에 대한 단상

인간은 한낱 인간일 뿐이었다. 너무도 무기력했다. 세상 모든 걸 쥐고 펼 수 있는 인간이라지만 대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는 힘 없이 쓰러졌다. 한 치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쓰러뜨렸다. 한 도시 문명 전체가 한 순간 멸망했다. 수십 만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집과 가족과 고향을 잃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잠깐의 찰나에 주위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그 심정이 어떨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이들을 생각하니 평소 내가 갖고 있던 고민 따위는 어린 아이의 응석보다 못한 것 같다. 더 비참한 건 사람들이 그 허망함과 절망을 느낄 새도 없이 먹을 것을 찾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슬픔에 젖을 틈도 없이 하루에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군 기지와 구호 캠프로 몰려온다. 아주 조그만 빵 한 조각이라도 얻어먹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렇게 한 순간 꺼져버릴 우리 인간도, 생명도 아니다. 무시무시한 자연의 재앙을 온 몸으로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으려 또 살려내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잿더미가 되어버린 건물들, 뭐든 살아남지 못했을 것으로 보이는 곳들에서도 인간들은 수십 시간을 버텨냈다. 세상에 생존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을까. 세상에 생명력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을까. 무려 백 시간이 넘는 시간을 버티며 건물더미에서 기적적으로 구조되는 사람을 TV로 보고 있자면 인간의 그 끈질긴 생명력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콘트리트 건물의 아주 작은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피는 잡초 못지 않다. 혹자들은 2012년을 인류 멸망의 해라 농삼아 걱정하고 있지만, 아이티에서의 그 혹독한 조건 속에서도 절대 생명의 끈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을 보면 그 어떤 재앙이 닥쳐와도 인류가 멸망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생명력보다 더 강한 힘은 세상, 아니 우주 어디에도 없다.

무신론이니 유신론이니 하는 유치한 잡론을 떠나서, 아이티 같은 재앙을 보면 과연 신이란 절대자가 정말 존재하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단지 재앙이 무섭기 때문이 아니다. 무시무시한 재앙의 위력 때문이 아니라 그에 못지 않게 무시무시한 인간의 생명력 때문이다.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 힘과 끈기는 신도 거스를 정도다.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참담한 상황에서도 생을 이어가는 그 끈질긴 악은 신도 감히 감당해내지 못할 것 같다. 신이 살려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비참할 정도로 얇은 생명의 끈이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한 생명이 생을 유지하기 위해 내는 믿을 수 없는 힘을 우리는 초능력이라 부른다. 그런데 바로 이 초능력이야말로 절대자의 영역이 아니던가. 

인간도 한낱 생명일 뿐이다. 사실 생명이란 거룩한 의미에 '한낱'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것도 모순이지만, 밑으로는 거대한 자연의 위력 앞에 힘 없이 꺼져나가면서도 위로는 그 재앙 속에서도 생을 놓지 않는 끈질긴 동시에 위대한 생명, 딱 거기서 거기까지 말이다. 그리 대단한 존재도 못 되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 있는 하찮은 존재도 더더욱 못 된다. 한편으로는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깔려 목숨을 잃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을 살려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대양을 건너온 구조대원들, 또 지옥 같은 재앙 속에서도 수십 시간을 온몸으로 버텨낸 사람들 모두가 하나의 생명이라도 잡기 위해 밤에도 불을 밝힌다. 나약하면서도 강한, 땅에 발을 딛고 머리로 하늘을 이고 있는 '인간', 그 본모습이 아닌가 싶다.

오늘 뉴스를 보다가 나온 구조대원의 한 마디가 생각나서 적어본다.
"누군가를 살려내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것만큼 보람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구조 현장 사진들













사진 출처: Times Online
참고로 사진을 가져올 때는 해외 뉴스 언론을 이용하는 게 좋더군요.
국내 인터넷 뉴스 사진들은 리사이징을 거쳐 크기도 작을 뿐만 아니라 보기 흉한 워터마크까지 큼지막하게 붙어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