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와 우파라는 말의 유래는 프랑스 혁명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 말, 시민 혁명이 일어난 후 프랑스에서는 국민의회가 소집되었다. 이 때 회의실에서 의장석을 바라보고 오른쪽에는 당시의 왕정체제를 옹호하고 귀족들에 대해 온건한 입장을 취했던 지롱드파가 앉게 되었고, 왼쪽에는 공화정을 주장하는 급진적인 개혁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자코팽파가 앉게 되었다. 오른쪽의 지롱드파는 현행 체제였던 왕정을 옹호하는 입장이었으므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을 갖고 있었고, 반면 왼쪽의 자코뱅파는 왕정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공화정을 수립하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다. 이후, 유럽 의회에서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정당은 회의석의 오른편에,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정당은 왼편에 자리하게 되는 것이 하나의 관행이 되었고, 이로 인해 우파와 좌파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렇듯 좌파와 우파라는 말은 특정한 이념을 지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서로 반대되는 성향을 지닌 각 세력 혹은 이념간의 상대적인 관계를 가리키는 용어에 가깝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liberalism이 공화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민주당'을 가리키는 반면, 유럽에서 liberalism이라 하면 사회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자유당'을 가리킨다. 같은 liberalism이지만 사회에 따라 한 쪽에서는 진보인 좌파로, 다른 쪽에서는 보수인 우파로 완전히 반대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좌우를 나누는 개념은 각 사회에 따라 혹은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서로 좌우의 위치가 전복되기도 하고 한 쪽의 상대가 바뀌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변해왔다. 진보와 보수의 구분을 특정한 하나의 사상적 조류로 볼 수 없듯이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구분 또한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보수의 방향으로 구분하는 '신자유주의'도 언젠가는 좌파들의 이념에 속하거나, 우리가 지금 진보라 말하는 '분배'에 대한 가치도 언젠가는 우파들의 이념에 속하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우파라고 주장하는 보수단체들이 설정하고 있는 좌파에 대한 개념은 1920년대,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에 머물러있다. 1920년대의 사회주의의 유행과 인기는 한반도에까지 영향을 끼쳐 국내에서도 공산당이나 사회주의 세력이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부터 공산주의 사상을 갖고 있던 이들에게 좌파란 이름이 붙어졌다. 이후 이런 좌파라는 꼬리표는 일제에 의해, 해방 후 친일잔재세력에 의해,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제도권에 대한 비판 세력을 잠재우기 위한 '가상의 적'으로 이용되어왔고, 이는 지금의 보수단체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민행동본부, 재향군인회, 뉴라이트의 눈에는 아직도 현 사회의 좌파가 단순한 친북세력, 빨갱이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싸잡아 적화통일을 시도했던 세력이라고 주장하고 있겠는가. 시민들의 촛불집회를 친북세력이라 단정하고 오바마 미 대통령의 방한을 맞아 성조기를 들고 거리로 나서는 모습을 볼 때면 과연 지금이 2000년대인지 1900년대인지 잠시 헷갈릴 정도다. 그들이 말하는 친북 빨갱이는 짧게는 50년, 길게는 무려 100여 년 전의 실체들이다. 저 사진 속 군복을 입고 있는 할아버지들이 과연 좌파와 우파의 어원에 대한 유래를 알기나 할까? 알고도 저런단 말인가?

이들에게 있어 좌파는 불필요한 존재일 뿐이다. 좌파는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하는 국익을 갉아먹는 존재로 여겨진다. 친북세력이기 때문에 한미동맹을 갉아먹고 있고, 노동 운동을 하기 때문에 기업 경제를 갉아먹고 있고, 친일 청산에 매달리기 때문에 일본과의 교류를 갉아먹고 있고, 시민 운동을 하기 때문에 법질서를 갉아먹고, 복지 정책을 펴기 때문에 성장 동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균형이나 토론은 없다. 오로지 좌파를 배척하려 들 뿐이다. 국익이란 명분에 반하는 것들은 모두 제거시켜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전체주의적 사고의 전형이다. 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엄밀히 말해 경제사적 사조인 '신자유주의'를 말하는 것일 뿐, 자유민주주의에서의 자유라는 개념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저 전체주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전쟁을 극복하고 산업화를 이루어냈다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다. 하지만 이 때문에 상당히 독단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며, 그들의 시대적 감각은 늘 산업화 시기에 머물러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군사독재시절을 살았던 이들에게 촛불집회와 같은 새로운 시민 의식과 풀뿌리 민주주의는 낯설기만 하다.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전체주의적 경향이 우리 사회 내에도 팽배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네오 파시즘'이다. 파시즘이라 하면 나치당이나 2차 세계대전처럼 마치 먼 과거를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상당수의 식자들이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을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는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취임 아래 네오 파시즘적인 색깔을 띤 정당이 장기 집권을 하고 있다. 절대 허투루 넘겨버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 진보 언론의 선구자인 리영희 교수는 최근 강연에서 우리 사회가 파시즘 초기로 접어들었다는 발언을 해서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도 이런 위험으로부터 절대 안전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앞서 말했던 보수단체들은 물론 검찰과 경찰 등 억압적 국가기구의 부상, 정계와 재벌들 간의 강화된 결속, 권력에 종속된 언론 기관들, 갈수록 입지가 줄어드는 표현의 자유 등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것들이야말로 강력한 국가의 통제가 아닌가. 아울러 사상 최대 실업자 수가 발생하는 등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인한 시민들의 탈정치화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옛 것을 대체할만 한 새로운 것이 출현하지 않는 상황에서 '퇴행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 안토니오 그람시

추천 영화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 2005)

이 영화는 우리 사회의 현 수구세력들이 장기집권할 경우 어떤 사회가 출현할 수 있는지 효과적으로 묘사해주고 있는 영화다. 영화가 설정하고 있는 곳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후의 영국. 지금은 의회정치의 본실이라 불리는 영국이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영국이란 나라는 현재보다 더 기술적인 언론 장악, 소수에 대한 탄압 등으로 만들어진 새롭고 강력한 파시즘 국가다.

실제로 작년 촛불집회에서 일부 시민들은 이 영화를 패러디한 집회를 갖기도 했다. 미래 파시즘 국가를 해체시켜버리는 이 영화의 주인공의 가면을 쓰고 나와 현 정권의 집회 탄압을 비꼰 것이다.

영화 주인공의 가면을 쓰고 나와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



언론 노조 파업을 규탄하는 반핵반김 집회



촛불집회 당시 열린 보수단체 집회

가운데 보수단체 회원이 들고 있는 피켓의 내용은 어처구니 없는 수준이다. 방과후에 모인 교복 입은 고등학생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엄마'들도 그럼 김정일의 추종세력이란 말인가. 대체 촛불집회가 6.25 남침 피해자들과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촛불집회 당시 보수단체가 사용하던 피켓

여긴 더 가관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와 현 정권의 소통 부재를 외쳤던 촛불집회가 대체 삼성 특검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보수단체들에게 모든 일은 되도 않는 '국익' 논리 뿐이다. 그 '국익'이란 것도 진정한 의미에서 나라의 이해란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 이익이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쌍용차 농성 당시 무자비한 진압 작전을 펼쳤던 경찰

용산 참사보다는 사회적 관심이 덜했지만, 평택 쌍용차 농성 진압 또한 현 정권의 억압적인 면모를 잘 드러내준 사건이었다.


일제고사 반대를 외치고 있는 고등학생들

집시법 개정이 완료되면 집회 때 복면을 하고 있거나 마스크를 쓰는 게 모두 불법이 된다.


작년에 있었던 뉴라이트 연합 4주년 기념식

미국 네오콘에서 따온 '뉴라이트'란 명칭이지만 실상 이들의 성향은 단순한 '수구'에 가깝다. 사진에 등장하는 뉴라이트 대표자들은 전국을 돌며 보수단체 회원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고 있다. 물론 그 강연의 내용은 "친북세력 척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