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기념하여 흥이 나는 세레모니를 즐기고 싶은데 막상 위로부터 보고 배운 것은 밀가루와 교복 찢기뿐이다. 거기에 우리 사회 특유의 집단 문화와 왜곡된 영웅심리가 가미되면서 졸업식 뒤풀이가 점점 도를 넘고 있는 듯 하다. 일부에서는 어느 사회 어느 집단에서나 있을 법한 통과의례 정도로 이를 무심하게 넘기려 하지만, 집단으로 특정 학생의 교복을 찢고 밀가루와 계란을 투척하고 또는 선배들의 강요로 다같이 강물에 뛰어드는 요상한 뒤풀이를 그저 십대들만의 문화라고 가볍게 치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본래 이런 졸업식 뒤풀이는 일제시대 당시 일본 학교에 대한 반항으로 졸업식에서 교복을 찢고 검은 교복 위에 흰 밀가루를 뿌렸다는데서 유래되었다. 그런데 왜 이런 점잖은 의미의 졸업식 뒤풀이가 날이 갈수록 변질되고 퇴색되어가고 있을까?

먹지 않으면 먹히는 세상
얼마 전 청소년들이 장난 삼아 지나가는 어린 아이를 발로 차거나 길거리의 노숙자를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큰 화제가 되었다. 소위 '노는 애들'이라 불리는 일부 학생들의 폭력성은 50년대, 60년대부터 쭉 있어왔던 문제였지만 이 동영상처럼 최근 들어 폭력적인 수위가 극심해지고 있는 추세다. 졸업식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서로에게 밀가루를 뿌리며 장난을 치는 '짓궂은 애교' 수준이었지만(물론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아직 이런 모습이겠지만), 최근 문제가 되는 졸업식 뒤풀이를 보면 짓궂다기보다는 폭력적이다. 집단 괴롭힘을 하듯이 한 학생의 교복을 찢고 밀가루와 달걀을 던지는 것은 예삿일이다. '졸업빵'이라고 해서 직접적인 폭행을 가하기도 하고 선배들이 졸업식에 찾아와 졸업생 후배들에게 집단 '얼차려'를 주기도 한다.

학교는 사회의 작은 축소판이다. 교실은 현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청소년들은 기성세대들로부터 보고 듣는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현 모습은 어떤가. 신자유주의라는 허울 좋은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 바둥바둥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게 바로 우리네 기성세대들의 모습이다. 먹고 먹히는 삭막한 세상, 내가 먹지 않으면 남에게 먹혀버리는 현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우리 학생들의 교실에도 그대로 표상되어져 있다. 내 스스로가 먼저 폭력적이지 않으면 나부터가 폭력을 당하는 그런 살벌한 교실 말이다. 아이들은 노숙자를 폭행하는 동영상을 찍어 '나'의 잔인한 폭력성을 친구들에게 과시하고, 또래 무리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수위 높은 통과의례를 견딘다. 바로 이게 살벌한 교실로부터 살아남는 법이다.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
초등학교에서는 방과후 특기적성 교육을 실시한다. 방과후 수업이라지만 고등학교의 보충수업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수업이 끝난 오후 시간에 학생들로부터 신청을 받고 외부 강사를 초빙하여 악기 연주, 미술, 공예, 골프, 수영 등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요즘 이 특기적성 교육의 신청자가 없어 각 학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학부모들이 초등학생 자녀들을 보습학원, 영어학원 등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특기적성 신청자 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어린 학생들의 다양한 취미를 길러주는 양질의 예체능 교육을 준비하고 있지만 정작 학생들은 부모의 손에 이끌려 영어학원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졸업식 뒤풀이 이야기를 하다가 왠 방과후 특기적성 교육 이야기냐 싶겠지만 마냥 상관없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학업 외에 다른 것을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매일 같이 학교, 자율학습, 학원의 굴레를 맴돌 뿐이었다. 학부모들은 체육, 미술 시간을 줄이라고 야단이다. 공부하기도 바쁜데 그런 예체능 과목이 무슨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갈 만한 곳도 그리 많지 않다. PC방, 오락실, 노래방이 전부. 바로 이곳들이 우리 학생들의 취미이자 여가 생활이자 놀이 문화의 전부다. 학생들이 다양한 여가를 즐길 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즐길 만한 여건 또한 마련되지 못했으니 학생들에게 즐길거리가 부족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졸업식도 마찬가지다. 졸업을 기념하여 흥이 나는 세레모니는 하고 싶은데 선배들로부터 보고 배운 것은 오로지 교복 찢기와 밀가루 투척 뿐이다. 외국처럼 파티나 여행 문화가 자리잡은 것도 아니고 단지 학교 근처 길거리에서 밀가루를 던지며 놀 뿐이다.

이들을 추운 아스팔트 위에서 떨게 만든 것은 바로 기성세대다.


결국 청소년들의 건전한 놀이 문화를 만들어주는 것은 현 사회와 기성세대들이다. 평소에는 그들에게 작은 관심조차 주지 않으면서 학교 교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펼쳐지는 삭막한 회색의 도시, 갈 곳도 놀 데도 없는 이곳에서 그들이 무엇을 하며 놀기를 바란단 말인가. 공을 차고 싶어도 축구장이 없어서, 밴드를 하고 싶어도 연습 공간이 없어서, 여행을 하고 싶어도 학원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청소년들이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찢어진 교복을 부여잡고 낄낄 거리는 것 뿐이다.

감동적이었던 졸업식 뒤풀이
본인이 다녔던 고등학교에는 5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온 유명한 합창단이 있었다. 학교 졸업식이 있던 날, 기념식이 모두 끝난 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합창단 졸업생들이 하나둘 운동장으로 모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합창해오던 곡들을 하나하나 다시 불러보는 것이었다. 그 친구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몇 년 간 정들었던 합창단을 떠나 마지막으로 부르는 노래였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들에게는 전통으로 내려오던 일종의 졸업식 뒤풀이였다. 덕분에 다른 졸업생들은 이들의 감동적인 하모니를 들으며 졸업식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고 학교를 찾은 학부모와 가족들도 이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쳐줬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