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아름다워졌다. 100여 년 동안 불려온 '전차군단'이라는 별명은 이제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월등한 체격 조건과 힘으로 밀어붙이던 과거의 축구는 사라졌다. 대신 빠르고 기술적인 축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마린, 토니 크루스, 외질, 케디라 등 독일 청소년 대표팀을 이끌던 젊은 영건들이 대표팀의 주축으로 합류하면서 독일의 팀 컬러가 확 달라졌다. 거기에 정말 '혜성'처럼 등장한 뮬러까지 합세하면서 독일은 '아름다워'졌다. 특히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공격으로 맞불을 놓아 완승을 거둔 모습은 엄청났다.



요한 크루이프는 자국 네덜란드가 준우승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자국 대표팀을 강하게 비난했다. 네덜란드 축구가 과거와 달리 '안티 풋볼'을 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팀 컬러는 뚜렷했다. 전통적으로 네덜란드는 '토털축구'로 아름다운 축구를 구사해왔었다. 빠른 패스와 짜임새 있는 움직임으로 90분 내내 경기를 지배했던 네덜란드.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네덜란드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아름다운 축구, 토털사커 같은 것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한 모습. 네덜란드의 거칠고 투박했다. 하지만 강했다. 수비적으로 일관하다가 역습 순간 기회를 노리는 일관적인 패턴이었지만, 백전노장 반 브롱크호스트가 이끄는 수비 라인은 그 어느 때보다 견고했고 에이스 스나이데르의 볼배급은 탁월했다. 하지만 크루이프의 말대로 '투박해진 네덜란드'를 보는 것은 아직 어색하다.



남미는 전통적으로 공격 축구를 지향한다. 특히 브라질은 공격 축구의 대명사다. 언제나 화려하면서도 파괴력 있는 공격력을 자랑해온 브라질. 하지만 이번 대회 브라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수비수 출신인 둥가 감독은 과거처럼 브라질의 공격력을 극대화하는 대신 수비 쪽에 무게를 두며 공수균형을 맞추는 쪽을 택했다. 화려함보다 실리를 택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브라질의 이러한 변신은 나쁘지 않았다. 감독 스타일에 맞지 않는 기존의 선수들을 과감히 배제하면서 조직력에 밸런스까지 갖춘 브라질은 더욱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네덜란드와의 8강전에서 아쉽게 패배하긴 했지만 뭔가 '안정되어진' 브라질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였다. 



제국의 해는 언젠가 저무는 법. 프랑스의 '아트사커'가 완벽하게 몰락했다. 월드컵 예선에서도 앙리의 '신의손'을 통해 겨우겨우 본선에 진출해 자존심을 구겼던 프랑스였는데, 본선에서는 더 처참했다.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짐을 싸야 했다. 더욱이 팀내 불화설까지 나돌면서 프랑스 대표팀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취악. 아무리 뛰어난 개개인이 모여있다고 하더라도 축구 같은 구기종목에서는 팀 스피릿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보여줬다.



불화로 갈기 갈기 찢긴 프랑스 대표팀과는 반대로, '화합'을 통해서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한 스페인도 있다. 스페인은 전통적으로 바스크 지역과 카탈루냐 지역의 지역갈등이 심각했다. 축구 대표팀 내에서도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카탈루냐 지역 출신 선수와 레알 마드리드 중심의 바스크 지역 선수들의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델 보스케 감독은 팀내 화합을 가장 우선으로 삼고, 이에 반하는 선수들을 과감히 배제했다. 지난 유로 대회 때부터 더 이상 스페인 대표팀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라울도 배제되었다. '라울' 없는 스페인, 어색하긴 했지만 스페인 대표팀은 결국 통합에 성공하고 우승을 일궈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