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4:00 맨체스터 시티 1: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올시즌 EPL 우승을 건 한판승부, 맨체스터 더비의 승자는 맨체스터 시티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승점은 같지만 골득실에서 무려 8골이 앞서면서 리그 우승에 한 발 다가섰다. 그동안 엄청난 '머니파워'를 앞세우고도 번번히 우승권에 진입하지 못했던 맨시티가 '돈으로 우승을 살 수는 없다'는 주위의 핀잔으로부터 해방될 날도 머지 않은 듯 싶다. 분명한 것은 이번 게임 승리로 맨유와의 리그 두 경기 모두 맨유를 제압하며 그동안 EPL 최강자로 군림해오던 맨유로부터 우위를 점했다는 사실이다.


내용만 따져본다면 역시 퍼기는 늙은 여우, 아니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였다. 발렌시아와 웰백 대신 박지성과 긱스를 기용했다. 수비적인 전술로 나올 것을 감안하더라도 예상 외의 선택이었다. 승점을 앞서있는 맨유에게는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 보이는 경기였다. 때문에 맨유가 잘하는 '선수비 후역습' 형태로 나올 것이라 여겨졌다. 중원이 두터운 맨시티를 상대로 압박이 좋은 박지성의 선발 출장은 어느 정도 예상되었다. 하지만 긱스의 출전은 예상 밖이었다. 스피드가 빠르고 역습에 능한 발렌시아 대신 긱스가 투입되었다. 퍼기는 속도감 있는 역습보다 템포를 늦추는 지공을 선택한 것이다.


전반 막판 세트피스 상황에서 눈 깜짝할 새 터져나온 콤파니의 결승골을 제외한다면, 퍼기의 전략적 선택은 탁월했다. 나이가 많은 스콜스와 긱스, 시즌 후반 다소 지쳐있는 에브라 등 맨유의 체력적 부담을 염두해 신속한 역습 대신 철저히 지공을 선택했다. 역습에 몰두하다간 자칫 잘못 경기 초반부터 정신 없는 공방전이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급할 것 없는 맨유로서는 최대한 시간을 버는 셈이었고 맨유의 느린 템포에 조급한 맨시티가 말려든다면 더할 나위 없었던 전략이었다. 실제로 맨시티는 전반 종료까지 이렇다할 공격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박지성을 필두로 한 맨유 미드필더들의 짜임새 있는 압박에 맨시티는 단조로운 공격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하지만 데 헤아의 약점은 극복되지 못했다. 어쩌면 이번 시즌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등을 통틀어서 맨유의 최대 약점은 데 헤아의 공중볼 처리였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데 헤아는 탁월한 민첩성으로 여러 차례 화려한 선방을 보여주고 있지만, 공중볼 처리에 있어서는 아직까지도 아쉬운 점이 많다. 이번 골도 그 때문이었다. 골에어리어 안으로 들어온 공을 처리하지도 못했고, 테베즈와의 몸싸움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도 못했다. 물론 콤파니가 엄청난 헤딩을 보여주었지만, 데 헤아의 선임이었던 반 데 사르를 떠올린다면 실점에 대한 아쉬움을 쉽게 떨칠 수가 없다.


맨시티의 전성기가 다가오고 있다. 공격진 라인업은 눈이 부실 정도다. 아게로, 테베즈, 제코, 발로텔리, 실바, 나스리 등 세계 최고의 초호화 공격진을 자랑한다. 여기에 이탈리아 출신 만시니의 수비축구가 더해지면서 맨시티는 그야말로 무결점의 팀으로 거듭나고 있다. 공격진의 화려함 속에서도 밸런스와 실리를 잃지 않는 축구를 하고 있다. 이번 경기에서도 맨시티의 수비는 빈틈이 없었다. 리그에서 날카로운 공격력을 보여줬던 루니와 나니, 웰백을 꽁꽁 묶어두었다. 후반들어 맨유의 반격이 살아나는 듯 했지만 데 용이 가세한 맨시티의 수비진은 두터웠다. 공격과 수비, 전체적으로 맨유보다는 맨시티에 무게감이 있었다.


이번 경기의 승리로 맨시티는 맨유와의 리그 더비전 두 경기를 모두 승리로 가져갔다. 그동안 EPL의 최강자로 군림해오던 맨유에게 완승을 거둔 것이다. 사실상 맨유의 독주는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맨시티는 EPL의 새로운 최강자로 등극하고 있다. 비록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뮌헨이나 밀란, 바르샤와 레알 등과 비교하더라도 전혀 밀리지 않는 전력을 갖추고 있다. 그동안 서로 다른 리그에서 모인 선수들이 발을 맞춰온 단계였다면, 지금은 만시니의 실리적인 전술 아래 선수들의 호흡이 농익어가고 있는 단계이다.


퍼기는 박지성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리그 경기에 연달아 결장하면서 시즌 종료 후 맨유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오늘 경기 선발 출장함으로써 퍼기의 구상 아래에 여전히 박지성이 있다는 사실이 판명났다. 비록 리그 경기에서 결장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할지라도 맨유는 항상 리그와 클럽대항전, 컵 경기 등을 모두 소화하는 팀이기에 전술적인 활용도가 높고 경험이 많은 박지성을 쉽게 내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퍼기는 강팀을 상대로 변칙적인 전술을 즐겨 사용하기에 전술이해도가 상당한 박지성은 퍼기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이다.


또한 커리어 말년에 퍼기에게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났다는 점도 흥미롭다. 퍼기가 그동안 강력한 도전자들을 겪어왔다. 벵거의 아스날, 무리뉴의 첼시, 울리에나 베니테즈의 리버풀 등. 세계 최고의 감독, '늙은 여우'란 수식어를 갖고 있는 퍼기가 새롭게 등장한 만시니의 맨시티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지켜보는 것도 앞으로 EPL을 보는 데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