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ikos'는 그리스인들에게 가정의 영역을 의미했다. 훗날 'oikos'는 'economy'의 어원이 되는데, 이는 개개인의 살림살이를 위한 사적영역으로 생계에 전념하는 곳을 뜻했다. 이에 반해 'polis'란 영역이 있었다. 'polis'는 말 그대로 도시 전체를 의미하며 사적영역과는 분리된 정치적 공간을 의미했다. oikos가 노동과 생식의 영역이었다면 polis는 말, 행위, 이성의 영역이었다. 그리스인들은 polis를 통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도시 공동체의 사안들을 결정했다. 오늘날 정치라는 의미를 가진 'politic'도 바로 이 polis에서 유래된 말이다.



2.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동물과 구분될 수 있었던 것은 이 polis의 영역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처럼 인간은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이 될 수 있는데, 인간이 타인과 조화를 이루면서 복수의 인간관계 속에 존재할 수 있게끔 해준 곳이 polis란 영역 때문이었다. 이처럼 공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말과 행위를 통한 정치적 행위는 인간성을 규정하는 핵심이었다.


하지만 공적인 것으로서의 정치적인 영역, 사적인 것으로의 경제적인 영역, 이 같은 이분법적 경계는 점차 무너지게 되었다. 이는 '사회적 영역'의 등장과 관련이 깊었다. 사회적 영역이란 기본적으로 사적영역에 속하지만 공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영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경제가 사적영역으로부터 독립되어 나오기 시작하면서 발생한 영역이다. 사회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단지 살기 위해서 상호의존한다는 사실이 공적인 의미를 획득하고 단순한 생존에 관련된 활동이 공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문제는 '정치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에 밀려 망각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사회적 영역에 기존의 공적 영역이 잠식을 당함으로써 공적 영역이 지닌 공적 가치들, 말과 행위, 이성, 자유와 인간성 등은 점차 등한시 되었다. 이에 따라 개인은 공적 공간에서 상호 소통하며 적극적으로 행위하는 정치적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원자화된, (아렌트의 표현을 빌리면) 거시적 통계의 한 단위에 불과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결국 정치라는 영역은 경제행위의 질서를 잡아주는 기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근대 이후 국가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잘 작동하도록 시장에 불간섭해야 하는 행정도구일 뿐, 그 이상 그 이하의 무엇도 아니었다.



3. 정치인이란 정치의 영역에 서있어야 한다. 공적 영역에서 시민들의 인간성을 이끌어야 할 정치인이 살림살이(oikos)에 몰두할수록 공동체가 갖는 공적 가치는 축소된다. 흔히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정치적 수준이 경제적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렌트가 말한 정치 영역에서의 공공성 회복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economy, stupid)."는 클린턴의 유명한 정치 슬로건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문구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