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은 공격성을 낳는다. 자신의 상태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 그 결핍된 부분을 무언가로 채워 넣으려 하는 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문제는 채워 넣기를 위한 재료를 대부분 자신의 외부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열등감이 높을수록 무언가를 취하고 빼앗고 싶은 욕망 또한 커진다. 역사적으로도 유럽인의 유대인에 대한 열등감이 나치를 탄생시켰고, 일본이 갖고 있던 섬나라라는 지정학적 열등감은 수차례의 크고 작은 전쟁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민족을 보고 960여 차례의 외침을 이겨내면서도 단 한 차례도 침략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지만,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주변국들에 비해 침략성을 띠지 않았다는 건 어느 정도 맞는 말 같다. 삼국시대의 고구려 시절 정도를 제외하면 이곳의 선조들은 자기들의 영향력 확장을 위해 한반도 바깥으로 눈을 돌렸던 적이 거의 없는 셈이다.

그만큼 이곳 사람들은 그동안 별다른 열등감 없이 지내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륙과의 사대적인 관계가 존재했지만 어디까지나 군사력의 차이를 감안한 실리적인 선택이었을 뿐, 스스로에 대한 긍지와 자존심은 잃지 않았다.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이곳의 선조들은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옆나라 일본이 틈만 나면 한반도를 침략해온 것과는 정반대였다. 우리는 굳이 다른 곳을 침략할 이유도 신경쓸 필요도 없었다. 달리 말해서 우리는 대대로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높았던 민족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 우리는 대중문화, 경제, 스포츠 등 온갖 방면에서 해외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래서 ‘해외 진출’이란 말에 열광하고 국내에서는 싸이나 BTS에 관심 없던 이들도 그들이 외국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 바로 제 일인냥 기뻐하는 촌극이 벌어진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서구에 대한 열등감이 지금껏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대대로 외침만 당하면서 바깥의 영토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선조들을 무능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거대한 인구가 아등바등 살아가야 하는 고단함에 대해 아무 탓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이곳이 문명의 한 중심이라고 생각하며 콧대 높게 살아간 선조들에 비하면, 현재 우리의 상태가 얼마나 나아지게 된 건지는 확신할 수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