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일요일 점심이었다. 삶은 밤을 먹으면서 TV를 봤다. 밤을 까먹느라 귀찮아진 손 때문에 평소엔 보지도 않을 ‘전국노래자랑’을 보게 되었다. 송해 할아버지(그냥 ‘송해’라고 하면 왠지 버릇없는 젊은이가 될 것 같아서)께서 외치는 힘찬 오프닝 멘트도 여전했고 출연자들의 끼와 분위기도 (거의 두 세대가 지났음에도 신기할 정도로) 변함없었다. 그런데 출연자들의 이름과 사는 곳이 자막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출연자의 이름 옆에 나오는 주소가 도로명주소로 나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부여군 무슨로’라는 식으로.

‘전국노래자랑’는 알다시피 전국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끼와 흥이 있는 동네의 출연자들이 노래실력을 자랑하는 지역 잔치 같은 프로그램이다. 그만큼 각 지역의 특색과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슈퍼스타K처럼 단지 노래실력만을 뽐내는 게 아니고 ‘그 지역 어디 살고 무슨 일을 하는 아무개가 평소 갖고 있던 끼와 재능을 시원하게 풀어보겠으니 다들 한껏 즐겨봅시다.‘ 같은 취지에서 무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자리에서 출연자를 소개하는 자막에 읍면동이 아닌 도로명주소가 표기되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은평구 신사동에 살고 있는 나와 은평구 증산로15길에 살고 있는 나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도로명주소로는 내가 사는 동네가 구체적으로 어디를 가리키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내가 속해있는 건 신사동이라는 동네지 증산로라는 길이 아니다. 그 사람이 어디 사람인지는 도로명주소로 절대 알 수 없다. 도로명주소는 길을 찾을 때나 쓰는 표기다. 아니, 이제는 길을 찾을 때라고 해서 유용한지도 잘 모르겠다. 도로명주소 도입이 처음 논의되었던 90년대와는 달리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상용화되어서 길을 찾는 데에 도로명주소든 지번주소든 아무런 차이가 없어졌지 않나.

아무튼 아무리 공영방송이라 할지라도 프로그램의 특성이나 주소체계에 대한 아무런 이해 없이 ’전국노래자랑‘의 출연자 자막을 도로명주소로 표기하는 건 좀 끔찍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