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란 것은 제가끔 분지복이 있어서 기수를 잘 타고 나든지 부지런하면 부자가 되는 법이요, 복록을 못 타고 나든지 게으른 놈은 가난하게 사는 법이요, 다 이렇게 마련인데, 그거야말로 공평한 천리인 것을, 됩다 불공평하다께 될 말이오? 그리고서 억지로 남의 것을 뺏어 먹자고 들다니 그놈들이 부랑당이지 무어요.

짓이 부랑당 짓일 뿐 아니라, 또 만약에 그러기로 들면 게으른 놈은 점점 더 게으름만 부리고 쫓아다니면서 부자 사람네가 가진 것만 뺏어 먹을 테니 이 세상은 통으로 도적놈의 판이 될 게 아니오? 그나마, 부자 사람네가 모아 둔 걸 다 뺏기고 더는 못 먹여 내는 날이면 그때는 이 세상 망하는 날이 아니오?

저마다 남이 농사 지어 놓으면 그걸 뺏어 먹으려고 일 않고 번둥번둥 놀 것이고, 남이 옷감 짜노면 그걸 뺏어다가 입으려고 번둥번둥 놀 것이고 그럴 테니 대체 곡식이며 옷감이며 그런 것이 다 어디서 나올 데가 있어야지요. 세상 망할밖에!

'치숙'의 한 단락. 무려 한 세기 전의 풍자. 그런데 현재진행형인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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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9 00:45

영화 '은교'에서는 69살의 노인 역을 30대 배우(말이 30대지 사실 박해일은 김고은과의 투샷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동안의 외모를 가진 배우다)가 할 수밖에 없었다. 노배우들이 캐스팅을 부담스러워했다는 후문도 있었고 연출자 측에서 대중적인 정서를 고려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덕분에 거부감은 덜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잃는 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노인이 소녀를 마음에 품는다는 게 핵심적 설정이었기 때문에 영화는 시작부터가 반쪽이 되고 말았다. 은교 역에 대한 캐스팅이 거의 완벽했다는 평가를 염두하면 더욱 안타까운 선택이었다. 섬세한 연출이나 영화적 완성도를 봤을 때 굉장한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결국 예술적 표현이 자유롭지 못하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대중의 몫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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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0 08:48

맥심 화보의 핵심 코드는 비아냥이다. 성범죄를 미화하려는 게 아니다. '나쁜 남자'란 말의 사전적 의미만을 부각시키기 위해 '악인 전문 배우' 김병옥을 모델로 삼고, 여성들이 좋아한다는 '나쁜 남자'에 대한 의미를 반어적으로 비유하고자 했다. 흔히 말하는 '나쁜 남자'에서 '나쁜'이란 부분이 갖고 있는 이중적이고 모호한 의미들을 꼬집는 것이다. 특히 "진짜 나쁜 남자는 이런 거다, 좋아 죽겠지?"란 텍스트까지 덧붙이면서 그 비아냥의 의도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영화에서 하정우가 조폭을 연기하면(사실 어떤 범죄자를 연기해도) 사람들은 멋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김병옥이 같은 조폭을 연기할 땐 그렇지 않다. 실제 조폭들이 풍길 것 같은 무서움, 삭막함 같은 걸 느낀다. 그의 인상부터가 실제 조폭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출자들은 김병옥 같은 배우들을 악역으로 쓴다. 그 배역을 미화하기보다는 극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맥심측이 화보 장면을 미화할 의도를 갖고 있었다면 하정우 같은 배우를 화보의 모델로 삼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 정말 악인 같이 악인을 연기했던 김병옥이 모델이었고 친절하게도 그의 영화 이력까지 나열하며 그가 왜 사전적 의미의 나쁜 남자에 걸맞는지까지도 설명해주었다. 이 화보에 필요한 건 멋있는 배우가 아니라 악인이 어울리는 섬뜩한 배우였기 때문이다.


단지 어떤 장면을 멋스럽게 다룬다고 해서 그것을 미화하는 건 아니다. '베테랑'의 유아인도 깔끔한 수트핏과 유려한 액션을 선보였다고 해서 개념 없는 재벌을 미화시켰던 건 아니다. 이 화보도 마찬가지다. 잡지 커버에 맞는 화보로서의 미적 퀄리티만을 갖췄을 뿐 김병옥이 연기하는 '나쁜 남자'를 미화시키려는 의도는 찾아볼 수 없다. 왜냐면 최대한 멋있지 않아야만 여성들이 싫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베테랑'에서도 유아인이 밉상이 될수록 결말이 사는 것처럼). 또 그래야만 여성들이 말하는 '나쁜 남자'의 의미에 대해 비아냥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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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7 22:19

첫째, 사람을 잘 찾는다. 탐사보도에서 중요한 건 인물이다. 그런데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의 사람 찾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심지어는 경찰도 못찾는 사람까지 찾아낸다. 안 나올 것 같은 목격자부터 시작해서 도망다니거나 잠적한 사람들까지 모조리 찾아내어 카메라에 담고 인터뷰를 딴다. 매번 수소문 끝에 찾아냈다고 하는데 그 수소문이라는 게 어떤 과정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만족할 만한 정보를 얻을 때까지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끝내 결과물을 얻어내는 거다. 그만큼 탐사보도의 완성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고 시청자들은 감탄할 수밖에 없다.


둘째, 스토리텔링이 좋다. 흡인력이 상당하다. 초반에는 호기심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몰입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종반에는 그 궁금증이 탁 풀리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든다. 때로는 전개에 반전을 주어 시청자들의 예상을 뒤엎는 짜릿함을 주기도 한다. 마치 기승전결이 잘 짜여진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보니 연식이 오래된 시사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꾸준한 인기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젊은층 사이에선 마니아가 형성될 정도.


셋째, 시스템을 문제삼는다. 가끔은 그렇지 않은 회차도 있지만 '그것이 알고싶다'의 대부분은 살인, 사기 같은 미시적 사건들을 다룬다. 앞서 스토리텔링이 좋다고 했지만, '그것이 알고싶다'가 추리소설과 다른 건 허구가 아닌 실제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사람의 실제 죽음을 흥미나 호기심의 관점에서 접근해도 되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의구심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는 건, 어떻게 그러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는지 제도적 결함이나 장치의 미비 등을 따져보고 때로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미시적인 수준에서 흥미를 끄는 데 그치지 않고 구조와 시스템을 고민하는 탐사 저널리즘의 본분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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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1 02:13

원래 흥행과 재미는 비례관계에 있었다. 영화가 재밌을수록 많은 관객이 영화를 봤다. 하지만 요즘 극장가를 보면 흥행과 재미가 꼭 비례하는 것 같진 않다. 재미없는데도 흥행에는 성공하는 영화가 나온다. '베테랑'도 그런 영화인 것 같다. 작품성이 훌륭한 건 절대 아니고 딱히 재밌는 것도 아닌데 천만 관객을 넘긴 것이다. 사실 무더운 8월이면 극장가의 성수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성수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국산 개봉작이 많지 않았다. 작년 여름만 해도 '군도', '해적', '명량', '해무' 같은 거액의 투자 작품들이 쏟아졌지만 올해는 그러지 못했다. 경기 불황으로 영화제작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개봉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결국 몇 안되는 작품으로 모든 관객이 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베테랑'이 천만을 넘어선 것도 영화 자체가 괜찮았다기보다는 이런 외적 요인들이 많이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봤을 때 '베테랑'은 그냥 클리셰가 전부인 영화다. 형사가 주인공인 클리셰1에 서민과 재벌의 대결이라는 클리셰2와 평면적인 선악 대결이라는 클리셰3이 더해져서 클리셰의 향연이 펼쳐진 셈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형사물보다 영화적 표현이 더 맛깔스럽다거나 더 스타일리쉬한 것도 아니다. 맨주먹 다이다이로 그려지는 류승완표 액션도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그림일 뿐이다. 오락 영화를 두고 작품성이나 세세한 완성도를 따지겠다는 건 아니지만 오락 영화를 기준으로 봐도 관습적인 클리셰가 전부인 영화를 과연 천만 영화라 칭송할 만큼 괜찮은 작품이라 평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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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31 22:37

뉴스만 보고 있으면 메르스 때문에 곧 나라가 망할 것 같고 북한과의 전쟁도 머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인터넷, 케이블TV, 스마트폰 같이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채널은 늘어났지만 알멩이 있는 뉴스는 드물다. 이슈에 대한 반복적인 보도만 수두룩. 오히려 기사 한 꼭지에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은 과거보다 훨씬 줄어든 것 같다. 음식으로 치면 단시간에 만들어낼 수 있는 패스트푸드만 가득하다랄까. 문제는 자극적인 정크푸드에 길들여질수록 건강한 음식은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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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4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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