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콤비'라는 말을 자주 쓴다. 개개인의 능력도 물론 수준 이상이지만, 그 개인이 서로 반응하며 매우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때 우리는 그들을 콤비라고 이름 붙여준다. 세상에는 유명한 콤비가 많다. 90년대 NBA를 주름잡았던 조던-피펜 콤비, 세계 배드민턴 혼합복식을 독식했었던 김동문-나경민 콤비, 최근 큰 유행이었던 차범근-김성주 축구 해설 콤비 등등. 특히 다른 구기 종목에 비해 조직적인 플레이를 중요시하는 축구에서는 유독 유명한 콤비가 많다. 최근 재결합으로 화두에 오르는 루드-베컴 콤비, 피를로-가투소 콤비, 모리-라울 콤비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콤비를 들자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바라하-알벨다'콤비를 꼽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대표팀은 명장 히딩크 감독의 조련 아래 매 경기마다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히딩크의 말대로 우리나라 대표팀은 경기를 지배할 줄을 알았고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 우리나라 대표팀이 경고 누적과 부상 등으로 인한 몇몇 핵심 주전의 결장으로 석패했었던 독일과의 경기를 제외하고 가장 고전을 겪었던 나라가 바로 스페인이었다. 앞서 말한데로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세계 최고 수준의 팀들과의 중원 싸움에서 압박을 무기로 절대 밀리지 않은 우리나라였지만 스페인 만큼은 중원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며 매우 고전했다. 바로 스페인의 강력한 미드필더들 때문이었고, 그 중심에는 바라하와 알벨다 콤비가 있었다.


이들은 2000년부터 라리가의 빅3 중 하나인 발렌시아에서 발을 맞추기 시작했고, 이에 더불어 스페인 국가 대표팀에서도 똑같은 자리에서 호흡을 같이 했다. 2000년에는 시드니 올림픽에서 국가 대표팀을 준우승에 올려놓았고, 02~03 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등의 강팀들을 뚫고 소속팀 발렌시아가 리그 우승을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만약 바라하가 알벨다를 만나지 못했고, 알벨다 또한 바라하를 만나지 못했으면 어땠을까. 비록 그랬다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평가를 받았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둘 다 유명한 선수들이 되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밀려온다. 과연 나에게는 나만의 바라하, 혹은 알벨다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머릿 속을 스쳐지나가는 몇몇 친구의 얼굴이 살며시 떠오른다. 친구를 생각하니 그를 누구보다도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더 소홀히 대하지는 않았나하는 괜한 후회가 든다. 또한 그 친구는 내가 그 친구를 생각하는 것만큼 나를 가깝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학교를 다닐 때는 줄곧 연락하고 얼굴도 자주보던 친구였지만 각자의 진로로 흩어져버린 후 생각처럼 자주 보고 자주 연락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또 이런 생각도 든다.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앞으로의 내 인생에 있어서 나의 바라하 혹은 알벨다가 될 사람은 없을까. 있다면 과연 누굴까. 그런 친구 혹은 형, 동생을 찾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오래된 친구의 그리움만큼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쉽지만은 않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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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31 17:16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사람들에게는 FC바르셀로나가 단순한 축구팀 그 이상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카탈루냐는 수도 마드리드와 끊임없이 대립했던 지역이었다. 카탈루냐 지역 사람들이 끊임없이 저항했지만 결국 프랑코정권 이후 자치권을 잃고 카탈루냐어 사용도 금지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FC바르셀로나는 이러한 지역민들의 가슴 한쪽 응어리져있는 한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팀이다. 카탈루냐 지역민들은 이 팀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FC바르셀로나는 세계적인 시민 구단으로 발전했다. FC바르셀로나는 이러한 역사적인 창단 배경 뿐만 아니라 또 한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 팀이다. 일반적으로 프로팀들은 대기업들과 유니폼 스폰서 계약을 맺지만 바르셀로나는 107년 여 동안 한번도 유니폼에 스폰서를 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특수한 창단 배경만큼, 기업이나 돈 등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고 시민구단으로써의 면모를 지키겠다는 전통때문이었다.


그러나 올시즌을 기점으로 그 100년이 넘는 전통이 깨지게 되었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시민들의 열렬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팀의 원활하지 못한 재정상황 상 유니폼 스폰서 계약을 체결할 수 밖에 없다는 구단 경영진의 결정이 있었다. 시민들은 물론, 각 나라의 많은 바르셀로나 팬들이 경영진의 결정에 아쉬워하고 한편으로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바르셀로나의 첫 스폰서 계약을 어느 기업이 잡을 것인지, 그 액수는 얼마나 천문학적인 액수가 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대형 언론들의 주 기삿거리가 되었을만큼 큰 이슈로 부각되었다. 그야말로 반전이었다. FC바르셀로나 유니폼 가운데에 적혀있는 기업은 '유니세프'였다.


단지 어느 기업이 바르셀로나와의 계약을 잡을 것인지 관심이 쏠려있었던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는 결과였다. 바르셀로나는 유니세프(국제연합아동기금)과 계약을 체결했다. 지금까지의 축구클럽과 기업의 유니폼 스폰서쉽 계약의 지배적이었던 통념을 깨고 오히려 유니세프에게 바르셀로나 구단 수익의 0.7%를 기부하는 것으로 계약했다. 역시 FC바르셀로나는 자신들의 외치는 표상처럼 클럽 그 이상의 클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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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31 17:13

이 곡은 고등학교때 음악을 좋아하는 한 젊은 선생님께서 만드신 조그마한 관현악단에서 연주했던 곡이다. 선생님께서 매우 젊은 분이셨기 때문에, 클래식 뿐만아니라 영화ost 같은 곡들도 많이 연주했었다. 내가 평소에 좋아했던 이 곡을 거기서 연주하게 되어서 기뻐했었던 예전이 기억 난다. 이 곡에서는 자칫 가볍게만 느껴질 수 있는 이 곡의 빠른 리듬을 첼로 소리가 비오는 축축한 날의 무거움으로 균형을 잡아주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바이올린의 구슬픈 선율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비오는 날의 개개인의 사연들을 조용히 말해주는 듯하다. 빠른 리듬때문에 서로 박자를 맞추기 위해 눈치를 보느라 정신없이 연주했었던 기억이 난다.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가기 위해 노력했었던 눈빛들. 그 눈빛들을 생각하니 이 곡을 함께 연주했던 친구들과 동생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보고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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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31 17:10

네이버 블로그는 그만두고, 제대로 블로그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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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3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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