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문뜩 궁금해졌다. 영어에도 우리나라 말로 '그래도'에 해당하는 말이 존재할까?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한영사전까지 뒤적여보니 'but', 'yet', 'nevertheless' 등이 나오긴 했다. 하지만 이들 단어가 '그래도'란 말을 표현하기엔 어딘가 부족해보인다.
영어에도 없는 '그래도'이란 말, 굉장히 인간적인 단어다.
때로는 고집스럽고, 때로는 맹목적이고, 때로는 희망적이고, 때로는 집착스럽다.

'그래도 우린 친구잖아, 안그래?'
'아무리 그래도 난 너가 좋아.'
'그래도 지구는 돈다.'
'속을 썩이는 아들이지만, 그래도 엄마는 널 사랑한단다.'
'세상살기 정말 힘들다지만 그래도 난 잘 이겨낼거야.'

친구랑 서로 마음이 상한 일이 있어도 친구라는 관계 그 자체만으로도 모든 것이 용서되기에 '그래도'란 말이 쓰이고, (물론 갈릴레오가 한 말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자신이 알아낸 진리를 세상이 몰라주는 서러움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진리를 믿는 갈릴레오에게도 '그래도'란 말이 쓰였다. 또 항상 속을 섞이는 아들이지만 순전히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들을 다시 품에 안을 수 있는 엄마에게도, 아무리 힘든 세상이라 할 지라도 이를 이겨내려 의지를 다잡는 이들에게도 '그래도'란 말만큼 하고자 하는 말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그래도'란 단어가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말할 때에는, 다시 말해 어떤 주장의 타당성을 논할 때에는 오히려 '독'이 되기 쉽상이다.

'그래도 이건 잘못됐어.',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래도 전라도 사람들은 무조건 마음에 안들어.'

이럴 때만큼은 '그래도'란 말 만큼이나 특정한 말의 인과관계를 무기력하게 상쇄시켜버리는 단어도 없다. 특정한 사실이나 주장에는 동조를 하면서도 그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뒷전으로 제껴둔채 '그래도'란 말을 동원해 막무가내로 자신의 생각과 고집을 유지시킨다. 즉, 특정한 인과관계의 타당함을 무시해버린채 자신의 말만 되풀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도'란 말이 갖는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말의 앞에 나오는 논리적 사실이나 주장에는 화자가 분명 동의한다는 것이다. 화자 자신이 '그래도'란 말을 사용함으로써 그 이전까지의 말에는 동의한다는 자기 스스로의 맹점을 품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시위여도 그렇게 과격하면 안되지, 그러니까 전경들 또한 과잉진압하는거지.'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이래선 안되지. 그래도 전경들이 그러면 안되지.'

학교에서 우연히 들은 학생들의 대화다. 이 대화에서도 '그래도'란 말이 지닌 맹점이 보인다. 후자의 학생은 앞서 친구가 말한 부분에 동의를 하면서도 무작정 전경들에게 잘못을 전가시키고 있다. 이런 식의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비단 이 학생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말이 지나고 전경들이 네티즌들의 도마 위에 올랐다. 물론 동영상에 뚜렷히 잡힌 것처럼 도덕성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 전경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경찰 내부에서도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인격적인 문제가 있는 전경도 분명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온갖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긴장 속에서 전경 모두가 하나같이 이성을 지킨다는 것이 더 이상할테다. 하지만 소수일 뿐이다. 이 폭력적 행태를 모든 전경들만으로 전가시킬 수는 없다. 이렇게 폭력을 가하는 전경이 있다면 다른 한 쪽으로는 군복을 입은 예비군들에게 자신들의 난감한 처지를 하소연하는 전경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왜 전경들이 그렇게 과잉진압을 해야했는지, 그리고 왜 그들 또한 시위대 못지 않게 흥분상태에 있어야만 했는지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시위대의 (일부의 과격한 시위대라 생각되지만) 목적지는 청와대였다. 물대포를 맞서야 했던 시위대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유모차를 몰고 촛불집회에 참석하러 온 아줌마나 학생들이 아니었다. 이 시위대는 평화스러운 촛불집회와는 거리감이 있었다. 청와대를 향했고 그 길을 막아선 전경들의 버스를 물리력으로 넘어뜨리고 파손하려 들었다. 그들은 촛불집회에서 갖가지 문화 공연을 보고 서로 자신의 생각을 토론하는 시민들이나 어린 학생들과는 분명 달랐다. 60여 년 전의 4.19도 아니고 민간인으로 구성된 시위대가 청와대로 진입한다는 것은 아찔한 상황이었다. 전경들은 이 절박한 상황 속에 투입되었다. 그들이 시위대에게 길을 내준다면 최고통치자의 집무실이 노출되어버리는 상황이었다. 비록 20%를 밑도는 낮은 지지율이라 할지라도 지금의 대통령은 분명 국민들의 대통령이다. 청와대가 시위대에 노출된다고 하는 것은 국민들에게도 심각한 위기와도 같았다.

'그래도'란 말로는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 볼 여유를 갖기 힘들다.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집회에 나서고 있다. 그들 전체에 대해서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지금 정권은 분명 많은 실정을 하고 있다. 고쳐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 집회를 시위로 만들고 그 시위를 격하게 만드는 소수의 사람들의 대화 방식은 잘못됐다. 그들의 말은 항상 '그래도'이다. 막무가내다. 그들의 방식은 절대 대화가 아니다.

가슴이 아프다. 전의경들이 촛불집회를 벌이는 우리들과 다른 점은 단지 그들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 밖에는 없다. 그들도 군복을 벗으면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행동을 하는 학생이며 20대들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집회나 시위일수록 선동적이고 감정적인 군중심리는 절대 경계해야 한다.

  • 글 잘 읽었습니다. (__)

  •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폭력이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전경이라고 할 것인가, 그들을 포함한 경찰 조직이라고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 경찰 조직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데는 동의합니다만, 그러니 '손발은 아무 잘못 없다' 고 할 수는 없습니다. 손발의 경우야 의지를 따르는 도구이지만, 이들은 독립된 인격체이고, 이들에게 있는 인격 자체의 문제들은 하나 둘씩 나타납니다.
    똑같은 폭력이라도, 방패 날로 사람 얼굴을 강타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져서는 안 됩니다. 악의에 찬, 분노의 행동과 필요에 의한 행동은 다릅니다. 잘못되었으므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법에 의해서지 직접적인 처벌에 의해서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 처벌이 폭력이어서는 더욱 안 됩니다.

    • 옳으신 말씀입니다. 어떤 폭력이든 당연히 정당화될 수 없는거죠.
      저는 단지 상황이 불필요하게 감정적으로 치닫는게 아닌가 우려하는 맘에서 해본 말들이었습니다.^^

  • seo 2008.06.06 21:01 # modify/delete reply

    좋은글 감사합니다.
    조금더 생각이 깊어지네요.

  • 유중근 2008.06.28 10:37 # modify/delete reply

    시각을 넓혀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얘기로 이해하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미국놈', '일본놈'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그 사회에 속한 전체가 놈들 천지가 아니란 건 누구나 알고 있지요?
    사람 같지도 않는 소수의 쓰레기들이 그 집단을 그렇게 부르도록 규정해 버렸습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주의에 깔린 쓰레기를 걷어내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는 줄기찬 투쟁만이 결국 민주주의를 완성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부조리한 것에 편승하여 사익을 추구하려는 악덕 모리배를 방치해선 안 됩니다.
    폭력 일부 전경들이 그랬을리는 없겠지만, 한 예를 들면 대한제국 때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급한 상황인데 도리어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이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럼 흔히들 쓰는 말로 매듭집니다.
    - 가슴은 뜨겁게! 대그박은 차갑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