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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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앚아 네모난 조간신문 본뒤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을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네모난 오디오 네모난 컴퓨터 TV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의식도 못한채로 그냥 숨만 쉬고 있는 걸

우리 또래라면 어렸을 적에 한번 쯤 들어봤음직한 노래, '네모의 꿈'의 일부다. 네모에서 시작해 네모로 끝나는 이 노래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있다면 어딜까. 조금은 어둡긴 하겠지만 교도소만큼 이 노래에 잘 들어맞는 곳도 없을 듯 싶다. 네모난 창살 안의 네모난 감방, 네모난 침대와 네모난 창, 네모난 교도소와 네모난 운동장. 무엇보다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의식도 못한채로 그냥 숨만 쉬고 있는' 그들이기에 이 노래에서 교도소를 떠올리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 네모의 창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쇼생크의 사람들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오늘과 내일이 똑같은 지겨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쇼생크라는 테두리 안에서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고,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고, 일하라 그러면 일하고, 쉬라 그러면 쉬는 것이 그들의 삶의 전부다. 좋아하는 취미나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따위는 중요치 않다. 단지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만 하지 않을 뿐이다. 아직 교도소에서의 삶이 익숙치 못한 신참 수감자들은 점점 바깥 세상에서의 삶의 내용을 잃어가고 다른 수감자들과 다를 바 없는 네모난 삶을 살도록 강요받는다. 과거에 들판에서 하모니카를 멋드러지게 불어쟀꼈던 추억, 아내와 피크닉을 다닌 추억 등은 말그대로 다시는 겪어볼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릴 뿐 교도소를 들어오기 이전의 삶은 맥주 거품처럼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삶에서 동떨어진다.

하지만 이전의 삶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길들어짐'이다. 쇼생크에 의해 보호받고 감시받으면서 수감자들은 감옥 생활에 길들여진다. 40년 만에 교도소에서 출옥한 '레드'가 '40년 동안 허락을 맡고 화장실을 다녔다. 이제는 누가 허락해주지 않으면 한방울도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한데서 길들여진 삶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바쁘게 살거나, 빠르게 죽거나'

쇼생크의 한 늙은 수감자는 석방을 두려워했다. 교도소 담장 너머로의 자유롭기만한 새 삶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오히려 교도소 밖으로의 발걸음을 무서워했다. 수 십 년간 굳어지고 단단해진 그의 쇼생크에서의 생활은 쇼생크 밖의 자유로운 새 삶을 살기엔 너무도 벅찼다. 그가 감옥에서 나와 겪게 되는 세상은 그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의 세상에 비해 너무나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런 세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또 그를 돕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그에게 벅찬 자유는 이미 쇼생크에 길들여진 그에게 독이 되었고 그가 마지막으로 누렸던 자유는 바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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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쇼생크에서의 삶을 살아왔다. 물론 지금까지의 삶을 죄수와 비교하는 것은 과하겠지만 나는 지금껏 부모님과 세상의 보호 아래 살아온 것은 분명하다. 아침 점심 저녁 밥상을 차려주면 밥을 먹었고, 그만 자라 그러면 누워서 잠을 잤다. 돈을 받아서 필요한 물건을 샀고, 공부하라 그러면 공부를 했고, 놀아도 좋다 그러면 그제서야 맘껏 놀았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 것이라 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차례로 다녔다. 물론 대학생인 지금 사회에서는 법적으로 어른 대접을 받지만 지금의 어른은 허물과 형식치레에 불과하다.

하지만 몇 년 후 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학교와 부모님이라는 보호 감옥 아래서 벗어나 하나부터 열까지 내 판단과 내 행동을 스스로 해야 한다. 더 이상 먹을 것을 주고 잠잘 곳을 마련해주고 해야할  일을 정해주고 보호해주는 존재는 없어질 것이다.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쇼생크 너머의 삶을 두려워했던 레드의 서글픈 눈망울처럼 나또한 아무런 보장이 없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그리고 사회로 내딜 첫 발걸음에 대해 두려워하긴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은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회 초년생으로의 내딛음을 기다리고 있는 대학생들 모두 자신에게 주어지는 무한 자유에 마냥 기뻐하지만은 못하고 있다.

이런 우리들에게 이 영화는 잠깐이나마 용기를 갖게 해준다. 갖가지 절망적인 고통도, 그리고 쇼생크 안에서 간수들로부터 여러가지 혜택을 누리며 안락한 수감생활에 안주할 수 있었던 타협의 순간도 모두 떨쳐버리고 자유로의 희망, 이 한 가지만으로 결국 '쇼생크탈출'을 이뤄낸 그의 해피엔딩은 어려운 상황, 고민 속에서도 한 가닥 막연한 기대와 희망섞인 여지를 가능하게 해준다.

'태평양이 내 꿈에서처럼 푸르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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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늙은이가 된 채 세상에 나온 레드가 새 삶이라는 희망찬 긴 여행을 시작하면서 한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좋았던 점이 주인공들의 주옥같은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였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영화를 읽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걱정스럽고 불안하기만 한 쇼생크 밖의 새로운 삶, 막연한 자유, 미래에 대해 저 한 마디면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