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다.
강한 녀석이다. 처음 녀석을 놓친지가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집에 침입한 모기 녀석들, 적어도 내 방에서는 단 한 마리도 살아나가지 못했다.
내 자신을 돌아보면 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진화가 덜 진행된 듯 하다.
일반 한국인 남자 치고는 많은 털과 수염들, 선천적으로 뛰어난 후각, 청각 등.
내 방에 들어온 모기는 이런 내 동물적인 청각과 운동신경에 의해 희생되어지기 일쑤였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제대로 된 녀석이 등장했다.
녀석은 사람 못지 않게 지능적이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 또한 갖췄다.
어디 그 뿐이랴, 공포의 에프킬러를 직접 맞고도 쓰러질 줄 모르는 강인한 피지컬까지 갖고 있다.

잠에 들 때면 어김없이 귓가에 녀석의 소리가 들려온다. '윙'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다.
그 소리가 어느 정도 귀에 가까워졌다 싶으면 나는 동물적인 반사 능력으로,
벌떡 일어나 순식간에 방에 불을 켜고 안경을 쓴 채 주위를 둘러본다.
보통의 놈들 같았으면 내 시야에 정체를 들어낸 채 내 손바닥에서 죽음을 맞이했겠지만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내 귀 주위를 맴돌았던 녀석은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때부터는 긴 인고의 시간이다. 엉겁의 시간이다.
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누가 끈질긴 인내심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싸움이다.
난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녀석이 하얀 벽이나 책상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린다.
녀석은 방구석 어느 곳에선가 몸을 숨기고 내가 제풀에 지쳐 잠들 때까지 때를 기다린다.
이 인고의 싸움에서 매번 졌던 것만은 아니다.
몇 번, 녀석의 정체를 찾아낸 적이 있었다.
종이 뭉치를 들고, 혹은 에프킬러를 들고 조용히 녀석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녀석은 내가 배드민턴 선수마냥 종이 뭉치를 휘둘러도,
촛불집회의 전경들이 소화기를 뿌려대는 것마냥 에프킬러를 연신 뿌려대도,
절대 바닥으로 쓰러지거나 정신을 잃지 않고 눈 깜빡할 새 내가 보지 못하는 곳으로 숨어버렸다.

점점 지쳐간다. 자다 벌떡 일어나서 녀석을 찾는 것도 이젠 지쳤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에프킬러를 뿌려대는 것도 이젠 그만하고 싶어졌다.
보잘 것 없는, 내 손톱만한 녀석이지만 내가 진 기분이다.
동물 대 동물로서 나는 녀석에게 완벽하게 패배했다.
하지만 녀석에게 졌다고 해서 자존심 상하거나 속상한 것은 아니다.
녀석은 나와의 싸움에서 이길 자격이 있었다. 내가 겪어봤던 그 어느 놈들보다도 강했다.

보상은 항상 승자만의 것.
그제도, 어제도, 오늘 아침에도 여기저기 녀석에게 안뜯긴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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