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사정 볼 것 없다 (No where to hide,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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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장면,
형사와 범인이 벌이는 마지막 결투씬.
안성기와 박중훈이 서로의 볼따귀에 주먹을 주고받는 장면으로도 유명했던 이 씬에서 만약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적막 속에 퍼붓는 비는 결투의 비장함을 더해주었고, '너 죽고 나 살자'는 매정하고 처절한 주먹다짐을 더욱 극렬하게 몰고 갔다. 온 몸에 젖은 비는 진흙탕과 함께 주인공들을 만신창이로 만들기 충분했다. 한 치의 자비도, 정도 없는 주인공들처럼 비는 싸우는 내내 차갑게, 차갑게 소리만 내며 내렸다.
영화의 배경음악, 비기스 'Holiday'의 여운과도 너무나 잘 어울렸던 빗소리까지.
가장 비장했던, 인정사정 없었던 비.



살인의 추억 (Memories of Murder,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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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다니냐?
몇 년 간을 쫓던, 너무나도 잡고 싶었던 용의자를 눈앞에서 놔줘야 하는, 만감이 교차하는 저 순간.
손에는 수갑이 아닌, DNA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허망한 서류 봉투만을 쥔 채,
용의자를 떠나보내야하는 순간, 빗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적막함 속에 저 한 마디.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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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클라이막스, 십 수 년간 준비해오던 탈옥 계획이 결국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주인공은 하수구에서 기어나와 오랜 세월 동안 나오지 못했던 바깥 세상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그의 포효하는 몸으로 사납게 퍼부어지는 빗줄기들처럼 더 시원한 비가 또 어디있을까.
그는 입을 벌리고, 가슴을 활짝 펼치고, 손을 벌리고 온몸의 세포구멍 하나 하나까지 하늘을 향해 활짝 열어재끼고 자유의 비를 온몸으로 맞이한다.


번지점프를 하다 (Bungee Jumping Of Their Own,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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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지금은 이 세상에는 없지만 배우 이은주를 너무나도 좋아했었기에, 지금은 더욱 애틋한 영화가 되어버린 '번지점프를 하다'. 이 영화에서는 유난히 비가 내리는 장면이 많았다. 그리고 비오는 장면마다 항상 이병헌의 어깨 반쪽은 빗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몸의 반을 비로 적시는, 순수한 한 남학생과 여학생의 설레는 사랑, 그러나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이루어지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더욱 구슬펐던 빗소리.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내렸던 비처럼 구슬프고 애절했던 비가 또 있을까.


클래식 (The Classic,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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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내렸던 비가 애절했던 비라면, '클래식'의 비는 새로운 사랑의 비다. 줄곧 혼자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과 옷자락 아래 하나가 되어 비 내리는 캠퍼스를 뛰어다니는 것처럼 설레는 비가 또 있을까. 명랑만화에나 나올 법한 유치한 그림이지만 유치하면 어때? 사람들 모두 한번 쯤은 저런 유치함에 빠지고 싶은 마음일테다.


마지막 황제 (The Last Emperor,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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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제의 둘째 부인이 판에 박힌 궁정 생활을 그만두고 홀로 비를 맞으면 궁궐을 나서는 장면.
하인이 건내준 우산을 마다않고 홀로 비를 맞으며 궁궐을 나선다. 입가에 미소를 띈 채.
류이치 사카모토의 'Rain'이 명곡이 되었던 장면.
빗소리와 곡의 조화가 예사롭지 않았던 씬이다.


꽃피는 봄이 오면 (When Spring Comes,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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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탄광 앞. 조그마난 아이들이 손에 트럼펫, 색소폰 등을 든 채 한 선생님의 지휘아래 연주를 시작한다.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아이들의 아버지들, 광부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빗소리와 함께 울려퍼지는 그들의 연주에 감동을 받기 시작했고, 이에 관악단은 온몸이 젖는 줄도 모른채 스스로 만드는 화음의 소리에 빠져든다.
음악에 대한 기쁨과 감동을 느끼기에 내리는 빗 속에서, 머리카락, 옷, 지휘봉 할 것 없이 모두 젖는 가운데서도 활짝 웃으며 지휘를 마다않는 선생님의 눈빛에서는 비처럼 은은한 행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