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오늘도 과일을 한 보따리 사오셨다. 초록색이 탐스러운 아오리 한 봉다리와 빨간색이 농익어보이는 천도복숭아 한 봉다리. 물에 씻어 각각 바구니에 담아놓으니 그 때깔이 더욱 탐스러워보인다. 그러나 이 아오리와 복숭아는 곧 사라질 것이다. 초록빛의 아오리는 내가 다 먹어치울테고, 빨간빛의 복숭아는 동생이 다 먹어 치워버릴 것이다. 비단 아오리와 복숭아 뿐만은 아니다. 엄마가 나물을 해서 밥상에 올려놓으면 나는 고사리 나물을 먹어 치우고, 동생은 도라지 나물을 먹어 치운다. 엄마가 멸치볶음을 해 놓으면, 나는 멸치볶음의 고추를 집어먹고, 동생은 멸치를 집어먹는다. 나는 참치가 들어간 김치찌개를 좋아하고, 동생은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를 좋아한다. 나는 배추김치를 좋아하고, 동생은 총각김치를 좋아한다. 나는 닭날개를 좋아하고, 동생은 닭다리를 좋아한다. 나는 명란젖을 좋아하고, 동생은 오징어젓을 좋아한다. 우리집에서 남는 음식은 없다.

배추김치의 이파리 부분을 즐겨 먹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배추김치의 줄기 부분을 즐겨 먹는 사람이 있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닭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생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흰색 셔츠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검은 셔츠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옷을 입는 경우는 없다. 어떤 사람은 검은색 자동차를 좋아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흰색 자동차를 좋아한다. 어떤 남자는 긴 생머리의 여자를 좋아하는 반면, 어떤 남자는 파마머리의 여자를 좋아한다. 어떤 여자는 우락부락 근육질의 남자를 좋아하는 반면, 어떤 여자는 곱상한 귀여운 남자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더하고 빼고 셈을 좋아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진리가 어쩌니 저쩌니 사색을 좋아한다.

우습고 황당한 상상이지만, 만약 반대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 나와 내 동생은 둘다 복숭아를 서로 더 먹겠다며 아옹다옹할 것이고, 남겨진 아오리는 음식물 쓰레기로 썩어갈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옷과 자동차를 타고 다니게 될 것이며, 거의 대부분의 영화나 음악, 소설도 다 사라질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의 음악과 영화, 소설만 읽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노란색 물감으로만 그림을 그려서 세상의 노란색 물감은 동이 날 것이고, 수많은 남자들은 하나 같이 자기의 마음에 쏙 드는 단 한 두 명의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피튀기는 살육전을 치룰 것이며, 대학의 학과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한 두 개의 학과만이 남게 될 것이다.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사람의 형질은 신비롭다. 노랑과 파랑이 만나면 노랑이나 파랑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초록이 나오는 것처럼 사람들은 그 대가 거듭될수록 각자만의 독특함을 갖게 된다. 부모님의 유전적 형질을 그대로 받게 되지만 어머니의 형질, 아버지의 형질을 따로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두 형질이 합쳐지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형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형질 때문에 세상은 오늘도 별탈 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일테다.

가끔 차가 달리는 도로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자동차들이 어느 순간 모두 어떤 한 도로로 몰려서 그 도로가 꽉 막혀버리는 일은 왜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순간적으로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돌리다가 몇 초 동안만이라도 어느 한 채널을 모든 시청자들이 보게 되서 그 프로그램이 순간 시청률 100%를 기록한다거나, 엘레베이터를 탔는데 1층까지 내려가는 도중 모든 층에 엘레베이터가 멈춰서 사람이 탄다거나 하는 일들은 왜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에 대한 물음들 말이다.

오래 전,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것들을 보고 자연의 균형성이라고 했다. 사람도 자연의 극히 한 일부분일 뿐, 크게 다르지 못하다. 사람들 모두가 서로 다른 점들을 가지고 서로 다른 것들을 좋아하고 서로 다른 행동들을 하며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균형을 맞춰간다. 쌍둥이마저도 서로 똑같아 보이는 외형만을 나눠 가졌을 뿐, 서로 다른 성격과 생각을 갖고 있다.

이처럼 사람은 각기 다르다. 다양함이 넘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단지 자신과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싫어하고 상대에게 으르렁거리는 사람들 말이다. 심지어서로 다른 취향을 갖고 영화를 보고나서 그 영화에 대한 서로의 평가가 잘못되었다고 텔레비전 토론회까지 나와서 악을 쓴다. 상대가 가지고 있는 그만의 특성이 있기에 자신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다. 자신과 다른 영화를 만든 사람만의 독특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다양하고 독특한 영화들을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내 생각은 이렇다'고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가끔은 텔레비전 리모콘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지만,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천도복숭아들을 맛있게 먹어 치우는 동생이 있기에 우리집에는 아까운 과일이 남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