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난리통이다. 서구 선진국들은 이미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하고 있고, 개발도상국들 또한 유래없는 저성장을 우려하고 있다. 별거 아닐 것 같은 서브프라임모기지론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도저히 망할 것 같지 않았던 미국의 투자은행들부터 줄줄히 도산하더니 이제 미국기업의 상징과도 같았던 GM도 파산이니 아니니 줄타기 중이다. 신앙과도 같았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믿음이 점점 흔들리고 있다. 철저하게 시장논리에 입각했던 신자유주의의 실패에 대해 말들이 많아지고 있다. 분명해진 것은 신자유주의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그 어느 체제보다 시장 본연의 원리에 철저했던 신자유주의가 왜 실패하였는가. 시장이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한 마디로, ‘투기’가 조장될 수밖에 없는 시장 자체가 갖고 있는 본연의 딜레마 때문일 것이다.


불과 얼마 전 시작된 미국發 금융위기의 진원지는 미국 부동산 시장이었다. 최근 들어 미국의 주택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새 주택을 담보로 융자를 받았던 ‘서브 프라임’층들, 즉 낮은 신용 수준의 사람들의 채무 상환 능력이 떨어지고, 은행에서는 자금 회수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주택 담보 대출자들과 은행들은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와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처럼 미국의 부동산 시장도 투기세력에게는 일종의 신앙과 같은 믿음이었다. 다른 투자처는 불확실하더라도 부동산 가격만은 꼭 오르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끊임없는 투기세력의 부동산 투기로 인해 선순환 구조를 갖게 되며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왔다. 더군다나 2000년대 초 미국의 IT산업의 거품이 빠지면서 많은 자본들이 부동산 시장으로 집중되었고, 이는 부동산 가격의 급등을 야기했다. 하지만 거품이 끝없이 불어날 수 없고 어느 순간 꺼지기 마련인 것처럼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수많은 채무자들의 파산했고 이런 부실 채권을 금융 상품으로 만들어 한 마디로 ‘돈 놀이’를 하던 은행들 또한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사실 투기로 인해 경제 체제에 위기가 도래된 것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무려 400여 년 전에도 오늘의 상황과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1600년대 초 네덜란드에서는 튤립이 인기였다. 온갖 색과 모양의 튤립들이 거래되고 있었다. 튤립에 대한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희귀하고 아름다운 튤립일수록 엄청나게 높은 값을 매겼다. 채만식의 ‘탁류’에서 묘사된 미두 선물거래의 모습처럼 이 당시 네덜란드에서도 튤립은 투기적 거래에 주로 이용되기에 이르렀다. 튤립에 대한 열기는 영원히 계속 될 것처럼 여겨졌으며 귀족, 일반시민, 농부, 하인 할 것 없이 모두 튤립투기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16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튤립에 대한 열기는 갑자기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불안해진 사람들은 너도나도 튤립 시장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튤립 가격은 급격하게 폭락했다. 이에 따라 집을 저당 잡히고 돈을 빌려 튤립에 투자했던 상당수의 사람들이 파산하고 길거리로 나앉았다. 네덜란드는 그 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처음으로 투기가 초래한 경제 공황을 겪은 것이었다.


신자유주의라는 모토 아래 지난 몇 십 년간 자본의 자유로운 국제적 이동이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투기 자본 또한 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도달할 수 있는 날개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투기 자본들에게 상대적으로 취약한 경제적 기반을 갖고 있던 지역들은 너무나도 허술한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여러 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1990년대 말에 불었던 아시아 외환위기의 충격도 사실 직접적인 원인은 헤지펀드들의 투기적 공격 때문이었다. 1997년 태국에서부터 시작된 헤지펀드의 투기적 공격과 단기 외환자금의 인출은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걸쳐 결국 우리나라까지 엄청난 경제적 충격을 주게 되었다. 이런 아시아 국가들은 이후 상당 기간 경제적 공황에 시달리는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헤지펀드들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차익을 얻어갈 수 있었다.

이렇듯 투기에 의한 거품이 어느 순간 순식간에 빠지게 되면서 경제적 공황을 겪게 되었던 역사적 경험은 비일비재하다. 아주 오래 전에는 네덜란드가 그러했고, 불과 몇 달 전에는 미국이, 그리고 아직까지도 긴 침체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이밖에도 1800년대 미국의 철도 거품, 이어 1900년대 초 금에 대한 투기 광풍. 아주 최근에 일어났던 유가 폭등 등 상대적으로 지엽적인 사례만 하더라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더군다나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무제한적으로 보장되는 신자유주의의 기조에 따라 이러한 투기의 부정적인 영향력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케인즈주의가 지배력을 잃은 이후 잠시 주춤거리던 세계 경제에 신자유주의는 이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될 것처럼 보였다. 시장원리에 충실하자는 기본의 경제적 논리로의 회귀를 통해 다시금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와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될 것 같았다. 시장논리에 반하는 갖가지 규제들은 소모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오로지 효율성과 경쟁만이 우선시되었다.

하지만 경제주체들의 ‘투기’ 행태는 더욱 활개를 쳤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각종 규제가 완화된 상태는 투기세력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었다. 매매차익이 발생하는 곳과 분야라면 어느 곳이든 투기적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이후 거품이 꺼지면서 은행들이 부실해지는 등 부정적인 파급효과가 발생하는 방식이 신자유주의 투기 폐단의 일종의 공식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금융 위기, 다소 광범위하게 말하면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튤립 거품으로 네덜란드가 헤게모니를 잃었듯 미국의 헤게모니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고 전환되는 과정의 신호탄과 다름없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논의대로 정점을 지난 미국 헤게모니의 금융 자본주의가 몰락하고 새로운 세계 헤게모니와 이에 따른 경제 체제가 도래하는 것이다. 물론 투기 거품은 신자유주의가 갖고 있는 구조적 문제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없을 테지만, 70년대 미국의 헤게모니가 정점을 통과하고, 생산성 향상보다는 금융으로 헤게모니를 유지하는데 있어 남아도는 달러와 온갖 금융파생상품들은 금융거품, 투기거품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