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언론에서 표방하는 正論直筆,
하지만, 정말 순수한 진실만을 말하는 언론이 있을까?

정치인만, 그리고 학생과 전경들만 싸움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도 항시 싸움을 한다. 칼럼이나 사설에만 언론의 생각이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모두들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보도기사'들도 이런 싸움에서 쓰이는 여러 무기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언론들은 제각각 자신의 언론사가 진실을 보도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각각 자신이 선호하는 언론만이 진실에 가까운 보도를 한다고 믿고 있고,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일부 언론들을 '조중동'이라 싸잡아 손가락질 하고 있고, 일부 사람들은 일부 언론들을 보며 '철없다'고 혀를 끌끌 차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진실이란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또 한 번 머리가 복잡해진다. 단순한 펙트만이 진실인가? 아니면, 펙트라는 이유만으로 객관적일 수 있는가?

사실, 언론이 단순한 펙트만을 수용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한 언론이 어떤 한 펙트만을 보도하거나 기사화했다고 한들, 사실 그 언론이 펙트만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준 것이라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하루에도 수없이 일어나는 펙트들 중 유독 그 한 가지 펙트만을 언론이 선택하여 기사화한 것은 그 보도의 내용을 떠나서 보도 자체만으로 어떤 의도나 의미가 포함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진만큼 객관적인 매개물도 없다. 기사처럼 기자의 펜을 통해 다시 쓰여지지 않는다. 단지 특정한 장소, 특정한 시기에 보여지는 사물 그대로의 모습이 기록될 뿐이다. 컴퓨터 그래픽 등으로 사진을 조작하지 않는 이상 사진은 펙트만을 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사진 또한 순전한 펙트만을 보여주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촛불집회 당시 수 많은 사진이 기록되었다. 어떤 사진에는 전경이 휘두르는 곤봉에 맞아 피를 흘리는 집회 참가자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고, 어떤 사진에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쇠파이프로 경찰버스를 부수는 집회 참가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같은 촛불집회를 찍은 사진이었지만 이 두 사진을 똑같이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

어떤 이들은 한 사안에 대비되는 입장이 존재할 경우 언론은 양쪽 의견 모두를 균형있게 다루면서 이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수용자가 할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객관성을 갖출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언론이 수용자에게 설정해주고 있는 결정의 범위 또한 애시당초 언론이 만들어 놓은 하나의 인공적 울타리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게 된다면 수용자의 입장에서 울타리 밖의 펙트들은 진실하지 않은 것들이 되어버리기 쉽상이다. 언론이 만들어준 울타리 내의 펙트들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띈 모든 범위인 줄 알기 때문에.

차라리, '정론직필'이란 표어를 없애면 어떨까?
모든 언론은 정론직필에 가까운 보도를 하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정론직필은 언론들이 추구해야 할 하나의 지침으로서의 기능마저도 상실해 가고 있는 듯하다. 정론직필, 정론직필 외치면서 정작 입맛에 맞는 펙트들만 정론직필하고 있다.
차라리, 언론은 모름지기 사실만을 다뤄야 한다는 믿음을 없애는 것이다. 수용자들은 언론을 '믿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수 많은 블로거들처럼 단지 하나의 입장 중 하나라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언론은 진실만을 다루고 또는 다루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환상'이 사라질 때 오히려 수용자들에게 언론의 더욱 의미를 갖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