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에서 9명 중 과반이 넘는 5명의 재판관이 위헌, 헌법불합치 판정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정족수인 6명을 채우지 못해 최종적으로 간통죄에 대해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무엇보다 간통죄에 대해 잘못된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간통죄는 고결하고 순결한 성윤리에 의해 만들어졌기보다는 입법 당시의 열악한 여성들의 처지와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당시 남성들은 '작은부인'인 첩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첩 때문에 본래 부인은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하고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이 사회로 내몰리게 되는 상황이 사회문제로 여겨질 정도였다. 이에 따라 그 당시 남편에게 버림받고 거리로 내몰리는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 울타리가 필요했고, 간통죄라는 필요불가결한, 어쩔 수 없는 '차선'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두 남녀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연애를 하는 과정을 거쳐 결혼을 하게 된다. 물론 결혼 전 남녀의 연애 과정에서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다고 법적으로 처벌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남녀의 관계가 결혼이라는 법적인 틀 내로 들어서면서 결혼생활에 대한 서로의 의무가 따르게 되고 이 의무에 벗어나는 행동,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불륜'은 법적인 제재를 받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불륜'이 과연 부부의 문제를 떠나 간통죄라는 형법적 문제로까지 확장시킬만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부부의 이혼과 결혼생활에 대한 의무 불이행 등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들을 민법의 테두리 내에 법제화시켜놓고 있다. 사기결혼, 경제적 갈등, 성격 차이, 이질적인 성적 취향 등 온갖 부부의 갈등 문제들을 민법을 통해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간통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관계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기 삽입만은 이런 민법이 아닌 형법의 문제로 엄하게 벽을 치고 있냐는 것이다. 절대 간통이 죄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민법의 범위 내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문제를 왜 굳이 형법으로, 일종의 가부장제 사회의 성스러운 '상징'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냐는 것이다.


간통죄를 사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흔히 '성적 문란을 방지하고자 한다'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무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간통죄가 존립했던 우리의 현 사회를 한 번 되돌아보자. 주택가, 학교 주변 할 것 없이 깊숙한 길거리는 모텔들로 넘쳐나고 있고, 간통죄를 중심으로 너무나도 잘(?) 조성된 성윤리 때문인지 우리나라 남성들은 해외로 자리를 비켜 원정 성매매까지 감행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을 중심으로 우리나라는 일본 부럽지 않은 퇴폐적 포르노 강국이 되었고, 강간 등 성범죄율은 세계 1,2위를 다툰다. 사회가 성적으로 문란해짐을 방지하고자 하는 간통죄나 유교적 전통에 뿌리를 둔 가부장적 규범들은 현실 사회에서의 성적 자유와 개방적인 성문화와 유리되어 오히려 사람들에게 성적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주고 있을 뿐이다.


아니, 간통죄가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의 대표적인 산물임을, 남성들이 여성들을 자신의 울타리 내에 가둬놓고 자신은 성매매와 축첩을 즐기는 이중적 성규범의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모두 논외로 제껴놓고라도 간통죄가 필요하다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만 묻고 싶다.


과연, 간통죄가 있다고 해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민법이 아닌 형법으로서 '간통죄'를 상징적으로 남겨둔다고 해서 부부의 혼외정사 문제가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을까? 좀 더 투박하게 묻자면, 간통죄가 있다고 불륜이 줄어들까? 아니면 불륜이 방지될까? 더 나아가면, 간통죄가 본질적으로 가족의 유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절대 혼외정사를 마음대로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혼이라든지 위자료 청구라든지 이런 방법들로도 충분히 제어가 가능한 사적인 문제를 왜 간통죄라는 칙칙한 형법의 손으로 국가가 나서서 개입하려드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