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일본정치를 관료가 움직인다고 말한다. 누군가 나에게 한국정치는 누가 움직이느냐고 질문한다면, 한국정치는 언론이 움직인다고 말할 것이다....(중략)...나 역시 현대 민주주의의 최대의 위협은 대기업화된 거대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에서 여론은 다수의 의견이 자유롭게 소통되고 합리적으로 설득될 수 있는 영역이어야 하지만, 언론이 거대 기업화될 경우 이들은 여론시장을 독점시장의 논리로 지배하려 하기 때문이다....(중략)...한국에서 언론의 문제는 세계적인 경향을 반영하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는 문제라고 본다. 비록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언론의 거대 기업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이들의 언론시장은 복수의 의견, 복수의 정치적 경향, 복수의 이념적 지향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여론시장은 매우 동질적인 정치적, 이념적 지향을 갖는 몇 개의 대기업 신문사가 독점하고 있다. 매우 동질적인 이념적, 정치적 지향을 갖는 언론대기업에 의해 여론시장이 독점되어 있는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은 별도의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 최장집 고려대 교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中 -

이번 언론관계법 개정은 단순한 공기업의 민영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혹자는 언론인 노조의 총파업을 밥그릇 지키기 정도의 이권 수호 투쟁 정도로 착각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의 민영화 혹은 규제 완화에 따른 현 방송인들의 집단 반발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언론관계법 개정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번 언론관계법 개정에는 여야 간의 알력다툼 외에 현 거대 언론들의 향후 미디어산업 독점에 대한 야욕, 더 나아가 보수 언론과 보수 정치세력의 거대 세력화 등의 상당한 심각성을 갖고 있다.

최장집 교수의 말대로 정치, 사회 할 것 없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권력은 바로 언론이다. 현 사회의 모든 이슈와 아젠다들은 가장 먼저 언론에 의해 결정되어지고, 새로운 정치 판도나 경제 상황 또한 언론에 의해 틀이 짜여 진다. 또한 이슈나 사건은 물론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가치 판단, 혹은 좌파인지 우파인지에 대한 이념적 구분 또한 사회적 공론의 장보다 언론이 먼저 결정해버린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이런 막강한 영향력을 구비하고 있는 언론이 동질적인 소수의 거대 언론들로 인해 거의 독점되다시피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너무도 충분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이들 거대 언론들에게 신문, 케이블방송도 모자라 이제는 지상파 방송까지 허락한다는 것이 이번 방송관계법 개정의 핵심이다. 물론 지상파 방송에 대한 접근을 자유롭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는 것은 OECD 국가들 중 우리나라뿐이고 이미 대부분의 국가들이 거대 언론미디어 기업들 위주의 언론시장이 구성되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앞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현재 우리 사회의 언론은 하나의 동질적인 이념을 갖고 있는 소수의 거대 족벌언론들이 언론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진보적 성향의 뉴욕타임즈지나 CBS 방송국, 보수적 성향의 타임지나 윌스트리트저널 등으로 거대 언론미디어들이 어느 정도 세력 균형을 이루고 상호견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른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족벌언론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적 언론 하나 존재하지 않는 마당에 이들 언론들의 독점으로부터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었던 지상파 방송의 영역까지 내준다는 것은 현 언론시장의 독점만 더욱 공고히 만드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이들 거대 미디어언론들의 몸집 불리기에 왜 현 정권이 앞장서서 나서는 지도 조심스레 경계해야 할 일이다. 사실 조중동의 족벌언론들과 현 집권세력인 한나라당의 돈독한 정략적 파트너십은 다시 언급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날이 갈수록 확연해지고 있다. 한 때 유행코드였던 ‘블루오션’이란 말을 이들만큼 제대로 현실화하고 있는 자들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현 집권당은 이번 방송관계법 개정을 통해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이 현 언론시장에서 막강한 독점적 지위를 획득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들 보수언론들의 지배적 영향력을 매개로 하여 비단 이번 정권만이 아닌 일본의 ‘55년 체제’와 같이 보수 일색의 정치 판도를 새롭게 구성하는 대중정치를 구현하겠다는 야욕을 보이고 있다. 한 마디로 족벌언론들은 현 국회의 다수당인 집권당을 이용하여 지상파 방송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현 집권당은 이들 족벌언론들의 살집을 키움으로써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적인 여론몰이의 파급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현 정권은 선진국들의 겉모양만, 후진적인 측면만 벤치마킹하려들고 있다. 진정한 선진국들은 독점현상에 대해 거의 알레르기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 영미에서는 정치권력을 사법, 입법, 행정으로 나눈 것으로도 모자라 의회를 상원, 하원으로 나누는 양원제를 실시한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미국의 반독점법에 의해 결국 만신창이가 되었고, 과거 세계 최대의 통신사였던 AT&T는 강제로 분할되어졌다. 현 우리 사회와 비슷한 예로 영국에서는 더 타임즈지를 발행하는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지상파 방송을 겸영하는 것을 막기 위한 ‘머독 조항’이 존재한다. 일반 기업이든 언론이든 최대한 독점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독점에 대한 심각한 폐단 등을 미리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선진국들의 끊임없는 노력은 현 정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인지, 혹은 보이지 않는 척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