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북’자에도 매우 혐오스러운 반응을 일으키는 현 청와대의 신년 키워드는 아이러니하게도 ‘속도전’이다. 속도전은 본래 북한에서 쓰이던 용어다. 북한의 <경제사전>에 의하면 속도전은 “일단 시작한 일을 낮잡지 않고 이악하게 달라붙어 불이 나게 해 제끼며 쉼 없이 새로운 혁명과업 수행에로 돌진해나가는 전격전의 원칙과 사업에서 중심고리에 힘을 집중하며 문제를 하나하나씩 모가 나게 해가는 섬멸전의 방법에서 담보된다.”고 한다. 청와대가 과연 이런 범상치 않은 용어의 유래와 뜻을 정확히 알고 사용한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러한 속도전의 유래에 대한 일각의 비판은 접어두더라도, 속도전은 굉장히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용어이다. 노무현 정부 집권 초 말이 많았던 ‘코드’라는 용어보다도 훨씬 부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속도전이란 용어가 당초 북한에서 쓰이던 용어이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게,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사회주의가 아닌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이다. 사회주의에서 대화와 합의와 같은 과정은 없다. 오로지 국가, 그것도 당과 주석의 수뇌부에 의한 일방적인 명령체계와 이를 군소리 없이 받아들이는 인민대중들이 있을 뿐이다. 때문에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속도전이란 가장 적극적인 사업 전개원칙을 말하는 일종의 슬로건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만약 일개 행정부처에서, 예를 들면 경찰이나 검찰, 혹은 국세청과 같은 행정당국에서 ‘속도전’이란 슬로건을 채택했다면 별 무리가 없었겠지만 문제는 이 용어를 적극 도입한 곳이 모든 국정을 총괄해야 할 청와대란 점이다. 우리 사회는 속도전이란 슬로건이 실효했던 사회주의 국가와는 정반대로 대화와 합의, 소통, 그리고 사안 결정에 있어서의 과정을 최우선시하고 있다.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어떤 추진사업에 대해 이견이 발생하면 국회의 여당과 야당의 목소리를 고루 듣고, 비서관들을 통해 전문가들의 양질의 조언을 듣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다. 하지만 어느 새부터인가 너무 ‘속도’에만 열중한 나머지 여당은 청와대의 손과 발이 된 듯 청와대로부터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기 급급한 모습을 띠게 되었고, 반대로 야당은 청와대와의 대화 상대로서 철저히 무시 받게 되었다. 나아가 여당은 청와대에만 귀를 쫑긋 세우고 대화와 합의는 목전으로 둔 채 법안의 졸속상정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모두 한통속으로 ‘가속’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국정운영에서 속도나 효율성은 절대 최고의 가치가 될 수 없다. 독재정권 시절 예외적으로 속도와 효율성이 가장 우선시되었을 뿐, 본래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이상점은 민주적 의식, 민주주의 등의 가치이다. 매번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선거라는 것을 치루고, 몇 번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 복잡한 입법 절차, 행정 절차 등도 모두 이 때문이다. 민주사회에서 아무리 잘 만들어진 제도나 훌륭한 결과물일지라도 그 과정이 독단적이고 일방적이었다면, 결과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더라도 충분한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거친 제도에 비해 절대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애초에 속도전은 경제 살리기에 대한 정부의 절실한 의지로 비춰졌다. 뉴딜과 같은 경제부양책들의 신속한 처리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방만해진 행정, 기업 경영 구조에 대한 적극적인 구조조정 등이 기대되었다. 하지만 정부가 강조한 속도전은 이상한데서 발휘되고 있었다. 경제 살리기와 연관된 민생법안들은 정작 속도전의 주요 대상으로부터 밀려나고 뜬금없이 언론관계법, 의료민영화, 금산분리 등의 법안들이 속도전의 주인공이 되어버렸고, 말 그대로 속도전으로 이 법안들을 졸속처리하려 했던 한나라당은 야당과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 살리기라는 속도전의 최소한의 명분마저도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토록 북한을 혐오하면서도 정작 속도전이란 말이 북한에서 유래한 말인지는 알고 있는지, 혹은 민주사회에서 최우선되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 청와대의 국정 철학에 대한 의구심은 차치하더라도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의 신년 키워드가 ‘대화’나 ‘설득’이 아닌 ‘속도전’이라는 점은 개탄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거의 대놓고 말이다. 북한 사전 속 정의처럼 혁명과업에 돌진하는 전격전의 방식은 더 이상 안 된다. 지난 촛불정국의 경험처럼 속도전과 같은 일방적 국정 운영방식은 계속해서 큰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계속해서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화와 설득이다. 꾸준히 라디오 연설을 한다고 해서 이를 대화라 할 수 없다. 겉만 번지르르한 일방적인 선전이 아닌 일정 수준 이상의 피드백이 오고가고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청와대가 진정한 설득과 대화의 자세를 갖는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