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구색에는 두 가지 색이 있다. 주광색과 전구색, 주광색은 보통의 형광등하면 떠오르는 밝은 흰색 빛을 전구색은 골목길 가로등 불빛처럼 주황색과 유사한 빛을 말한다. 실내에서는 주로 더 밝다는 이유로 주광색 형광등을 사용한다. 보통의 스탠드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나는 주광색보다는 전구색 불빛을 더 좋아한다. 보통의 형광등은 너무 하얗기만 하고 눈부시다. 대신 주황색 빛은 왠지 정감 있다. 책상 스탠드도 주황색 빛 전구로 바꿔버렸다. 나는 A4용지도 보통의 흰색 용지를 쓰지 않는다. 미색 용지라고 따로 나오는 A4용지를 사서 쓴다. 새하얀 흰색보다 누르끼리한 색이 한결 부드러워 보이고 눈도 덜 아픈 것 같다. 왜 이리도 흰색을 맘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인지, 내가 순백하고 순수하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나만 이런건가?


"너는 왜 이리 비판적이니?" 친구가 물었다. 아주 심각하게 물은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 뜨끔했다. 그렇지 않아도 국회니 정권이니 조중동이니 이리저리 노발대발하기 바빠서 내 스스로도 설설대고 있었는데,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나 또한 매사에 투덜거리만 하고, 어떤 대상의 좋은 것보다는 안 좋은 것만 보고, 머리를 부정적인 생각들만으로 채우고, 무슨 일이든 딴지를 걸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엄청 싫어하기에, 아니 혐오하기에 더 조심스러웠다.


'마흔이 넘으면 세상을 향해 투덜거려선 안 된다'란 말이 있다. 물론 과장되긴 했지만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마흔이 넘으면 기성세대가 된다. 그리고 기성세대는 단어 뜻 그대로 현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주역이 된다. 때문에 지금의 사회 모습을 만드는데 일정 몫을 일조한 기성세대가 세상을 향해 불만을 갖는다는 것은 그 자신부터 책임 소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아이러니를 갖게 된다. 슬픈 일이다.


하지만 난 아직 이십대다. 너덜너덜해진 엄마 아빠의 주민등록증과 달리 내껀 이제야 슬슬 기스가 가기 시작했다. 사회에 발을 담가보지 않았기에 아직 사회에 대한 책임도 없다. 취업은 고민이지만 아직은 벌어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또 옳지 않은 답안을 내도 아직 학생이기에 다음 기회라는 여지도 남아있다. 그러나 나 또한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느 순간 어렸을 때는 용인할 수 없었던 세상의 부조리와도 타협해 가는 기성세대가 될 것은 당연하다. 마흔? 서른? 생각보다 세상과 타협하는 순간이 언제가 될 지,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른다. 헌데, 내가 지금 이 순간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난 대학생이다. 그것도 사회학도다. 나이가 들기 전까지 내 마음대로 이것저것 실컷 투덜거릴테다.


단, 비판적인 사람이 되되 비관적인 사람이 되기는 싫다. 반항적인 사람이 되되 부정적인 사람이 되기는 싫다. 세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되 이후의 세상을 낙관하는 낙천주의자가 되고 싶다. 젊었을 땐 여기저기 빈틈을 콕콕 찌르는 사람이 되되 나이가 들어서는 그 빈틈을 유유히 메워주는 푸근한 어른이 되고 싶다. 젊었을 때, 학생일 때 마음껏 세상에 불만할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