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나 사회학자들에게 지배적인 패러다임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과 같다. 평소 쓰던 안경이 사라지면 사람이 안절부절 못하듯이 학자들도 기존의 패러다임이 유명무실해지면 으레 불안해하기 마련이다. 학자들은 늘 세상을 명확히 볼 수 있는 안경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최근 탈냉전이라는 기존의 몇 십 년과는 확연히 다른 세상이 도래하였다. 냉전시대 때 사용했던 안경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음은 물론이었다. 기존의 패러다임이 해체된 것이다. 학자들은 불안해 했고, 많은 학자들이 제각각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경들을 제시하였다.


그 중 헌팅턴이 주창한 문명충돌론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문명의 충돌>에서 헌팅턴은 냉전 이후 세계 질서는 더 이상 정치나 경제, 이데올로기나 국익이 아닌 동질적 문명에 따라 재편되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기존의 세계 질서가 소련과 미국을 축으로 사회주의, 자유주의 진영으로 나뉘어졌었다면, 이제는 각 지역의 종교, 문화를 중심으로 소수의 핵심국을 중심으로 주변국들이 결집하는 문명들끼리의 다극적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문명들을 크리스트교 중심의 서구문명, 이슬람 문명, 러시아 중심의 그리스 정교 문명, 중국 중심의 중화문명, 일본 문명 등 구체적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실제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탈냉전으로 인한 많은 학자들의 불안함을 달래줄 정도로 큰 찬사를 받아왔다. <문명의 충돌>에서도 볼 수 있듯 그는 각 문명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을 선두로 한 이데올로기 대결이 해체된 후 경쟁자를 잃은 미국 외에는 딱히 ‘극’이라고 할 만한 주체가 아직은 그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는 지금, 문명이라는 유래 깊으면서도 참신한 주제로 세계정세를 재편하고자 한 주장 역시 그의 놀랄만한 광대한 지식만큼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헌팅턴이 내놓은 이 야심찬 패러다임은 다소 의외일 정도로 무시 못할 비판과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마지막 남은 미국의 양심 노엄 촘스키의 살생부에서 그의 이름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가 한동안 직접 현실정치에 참여하여 ‘정치물’을 먹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촘스키에 의하면 그는 미국의 국익을 가장 선두에서 옹호하고 있는 학계의 대변자에 불과하다. 그가 주창하는 문명충돌론은 냉전 이후 전쟁 상대를 잃은 세계 최고의 군수산업 국가 미국이 이슬람이나 중화문명 등 새로운 적이자 상대를 임의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하나의 명분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그가 발간한 논문의 제목이 문명의 ‘충돌’인 것만 보더라도 그가 문명의 대결구도와 문명들끼리의 배타적 충돌에 더 무게를 둔 것을 알 수 있다. <문명의 충돌>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하고 있기로 유명한 독일의 하랄트 뮐러는 그의 저서 <문명의 공존>에서 헌팅턴이 주장하는 서구를 위협한다는 적대적인 문명들의 존재가 실제로는 얼마나 설득력 없는 환상인지 밝히며 ‘너와 나’, ‘서구와 비서구’의 적대적인 이분법적 사고관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일깨워주고 있다. 비서구 문명들, 그 중 대표적으로 이슬람 문명을 예로 들면서 이들 문명이 결국 어떤 식으로든 서구 문명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탈냉전 이후 급속도로 증가한 서구와 이슬람의 갈등에 대한 당위를 부여해주고 있는 것이다.


"헌팅턴이 말한 충돌, 국가 간의 충돌이든 민족 간의 충돌이든 이 충돌들이 그의 말대로 과연 종교, 문화 등 문명적 요소들로 인해 발생하게 된 것인가에 대한 물음도 의심의 여지가 있다. 아주 최근 일어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분쟁, 얼핏 보기에는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의 종교적 갈등에 따른 분쟁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언론에서도 기껏해야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미사일 공격을 규탄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출 뿐, 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구를 공격하는 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하지만 ‘알만 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번 공격에 분명 석유이권을 유대계 자본의 거대한 음모가 있었을 것이라는 설득력 있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사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것도 테러나 대량살상무기라는 명목은 말 그대로 명목에 불과한 구실이라는 점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아울러 정말 미국이 필요로 했던 것은 이라크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였다는 사실도 굳이 되새일 필요도 없다.


한 마디로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분쟁 발생에 있어 국익과 정치적 목적이라는 ‘검은 속’을 문명이라는 그럴 듯한 사탕발림으로 희석시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화적, 종교적 차이는 매우 본질적인 문제다. 언제부터인가 문화상대주의란 흐름 아래 상대의 문화, 종교적 기반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금기시되고 있다. 헌팅턴은 바로 문화상대주의를 이용하여 갈등과 충돌을 정당화시키는데 인류학적 근거로 도용하고 있는 것이다.


헌팅턴은 세계를 8개의 문명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 중 눈여겨볼 것은 중화문명과 일본문명을 따로 분리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문화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의 시각에서 일본을 굳이 중국 중심의 유교문명에서 분리시켜야 할 근거는 쉽게 눈에 띠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최근, 메이지유신 이후로 적극적 개방을 통해 다른 중화문명권 국가들에 비교하여 빠른 서구화를 이루어낸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뿐, 아주 오래 전에서부터 지금까지 유교문화권의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헌팅턴의 동아시아에 대한 자료 분석이 미숙했을 가능성도 있다. 즉, 그의 실수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수라기보다는 특정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간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 전반에 걸쳐 중화문명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부상에 가장 주목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중화문명이 성장하여 서구 문명에 견줄 수 있는 제일의 문명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물론 헌팅턴은 중화문명의 성장을 마냥 반기지만은 않는다. 언제든 서구 문명에 대해 적대적인 자세로 돌변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유교문명권에서 일본을 억지로 떼어내고 있는 점이다. 2차 대전 이후 서구, 특히 미국의 최고 파트너는 일본이었다. 일본을 중심으로 동북아 자유진영의 정세 질서를 재편시켰으며, 일본에 막대한 경제 원조를 지원해줌으로써 가까운 중국과 소련을 견제할 수 있는 대항마로 성장시켰다. 냉전 종식으로 이전까지의 동맹 구도가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미국과 일본의 결속은 단단하기만 하다. 특히 미국은 앞으로도 일본과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유지해 나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헌데, 어찌 헌팅턴은 일본을 중화문명에 속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