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시티 전, 람파드는 종료 직전 극적인 역전 결승골을 성공시키고 스콜라리 감독을 부둥켜 안았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첼시는 건재해보였다. 맨유에게 당한 0:3이라는 굴욕적인 완패도 별 것 아닌 듯 곧 극복해낼 것만 같았다. 그런데, 또 다시 첼시에게 위기가 다가왔다. 앤필드에서 벌어진 리버풀과의 프리미어리그 24라운드. 이미 1위 맨유와는 5점 정도의 승점 차가 있었기 때문에 첼시, 리버풀 모두 이번 경기에서 지는 팀은 리그 우승의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상황에 몰려있었다. 명불허전의 최고의 경기가 될 줄 알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리버풀이 단 한 차례도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았던 일방적인 경기 내용이었다.

이번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첼시는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맨유의 호날두나 리버풀의 토레스 모두 유로2008 때문에 충분한 휴식기간을 갖지 못하고 주춤하는 사이, 아넬카나 람파드 등 첼시 주축 선수들은 쾌조의 컨디션을 보였고 스콜라리 감독과 함께 이적한 데코 역시 기대 못지 않게 좋은 활약을 해주었다. 하지만 점점 페이스가 떨어지더니 10월에는 리버풀에게 홈 무패 기록을 빼앗기게 되었고 아스날에게도 패배를 당하더니 에버튼, 풀럼 등 중위권 팀에게까지 잇달아 발목을 잡혔다. 결국 맨유, 아스날, 리버풀에게 연달아 패하며 이들 빅4로부터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물론 에시앙의 부재가 가장 큰 요인이었다. 미켈이 그 빈자리를 열심히 메우고 있긴 하지만 첼시에서 차지하는 에시앙의 비중이 워낙 컸기에 미켈에게 에시앙의 몫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엄청난 활동력으로 필드 어느 공간이든 첼시 선수들의 수적 우세를 만들어주었던 에시앙이 사라지자 첼시 중원은 금세 산만해졌다. 발락, 람파드, 데코 같은 좋은 선수들이 많았지만 이번 리버풀과의 경기에서도 볼 수 있었듯 마스체라노와 같은 '지독한' 태클러를 만날 경우 첼시 중원은 맥을 못추고 그냥 무너져 내려 버렸다. 또 제라드나 알론소처럼 상대의 중원이 마음 먹은대로 플레이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한 압박도 부족했다. 그때그때 공을 돌릴 뿐 짜임새 있는 공격도, 철두철미한 압박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무링요 감독 시절 첼시는 '진절머리 나는' 팀이었다. 선 굵은 축구를 즐기는 다른 EPL의 클럽들과는 다르게 최전방과 최후방의 간격을 최대한 좁히면서 상대팀에게 공간을 최대한 주지 않고 압박을 하며 철저히 약속된 패스 게임으로 한발 한발 상대 골문을 향해 전진해나가는 무링요 특유의 짠물수비를 보여주었다. 일부 영국인들은 재미없는 축구라고 조롱하기도 했지만 첼시는 당당히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맨유, 아스날, 리버풀 등 명문구단의 아성을 무너뜨리기까지 했다. 무링요의 첼시는 분명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때문에 이런 첼시가 기술, 창의적 플레이를 강조하는 바르셀로나나 선 굵고 휘젓길 좋아하는 맨유와 같이 전혀 반대의 스타일을 갖고 있는 팀과 충돌할 때면 어김없이 명승부가 연출되었고 '첼시'란 말만 들어도 축구팬들은 가슴을 설렜다.

첼시는 스타일을 잃었다. 색色을 잃었다. 스콜라리 감독은 다시 자신만의 색으로 첼시를 탈바꿈시켜야 한다. 특히 자신과 스타일이 맞지 않는 선수들은 과감히 내치는 결단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첼시가 하루 빨리 '스콜라리의 첼시'로 변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브라질,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보여주었던 그만의 세련된 공격 축구로 무링요의 첼시와는 180도 다른 새로운 첼시가 완성되었으면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임대로 온 콰레스마에 거는 기대가 크다. 콰레스마 임대로 인해 첼시는 전통 윙어의 부족이라는 고민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며 스콜라리식 공격 축구 또한 한층 날카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강한 팀'이 많아진다고 리그가 재밌어지는 것은 아니다. 팀들이 제각각 저마다의 특색을 갖게 될 때 리그는 재밌어진다. 축구만이 아니다.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특색을 갖고 있는 팀들끼리 충돌하며 서로 물고 물리는 예측불허의 경쟁이 벌어질 때 팬들은 열광한다. 아스날의 독주에 첼시가 제동을 걸었고 첼시는 다시 그 왕좌의 자리를 맨유에게 넘겨주었다. 그러자 주춤하던 리버풀이 다시 왕년의 영광을 재현하려 달려들고 있고, 벼락부자가 된 맨시티의 졸부 행각을 아스톤 빌라는 실력으로 비웃어주고 있다. 여기에 최근 부진한 첼시마저 다시금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다면, 축구팬으로서 이보다 더 흥분되는 것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