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는 축구공을 들고 발에는 멋있는 축구화를 신었지만 정작 공을 차고 뛰어 놀 곳은 없었다. 초등학생 때나 대학생이 된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딸깍딸깍 축구화 걸음으로 근처 학교 정문 옆에 있는 경비실 창문을 조심스레
두드린다.

"저기, 아저씨. 저희 여기서 축구해도 되요..?"

경비 아저씨는 창문도 열어주지 않은 채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나도 뒤에서 조마조마 기다리고 있던 십수 명의 친구들을 향해 고개를 젓는다. 친구들은 고개를 숙인다.

"진짜 마지막으로 옆에 학교에 가보자..."

나랑 친구들은 추운 날씨에 볼만 빨개져서 또 다시 근처 학교 운동장으로 딸깍딸깍, 축구화로 걷는다.

어렸을 적 친구들과 공을 차며 놀기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한 번 쯤은 겪어봤을 법한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도시에 살던 나와 내 친구들에게 마음껏 공을 차고 뛰어 놀 공간은 턱 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학교 운동장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런 학교 운동장마저도 마음껏 공을 찰 수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너무 어려 위험하다는 이유로, 커서는 어린 학생들 노는데 우리가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늘 출입을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그나마 이 정도면 약과였다. 돈을 내야지 운동장을 쓸 수 있다는 엄포를 들을 때면 돈 없는 학생이라는 신분이 억울하기까지 했다.


지금껏 나는 이런 나라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이런 나라가 한 번으로도 부족해 월드컵을 두 번씩이나 유치하려고 한단다. 어이가 없었다. 창피한 수준의 국내 축구 리그 관중 수, 밋밋한 리그 수준, 지지부진한 협회 운영은 모두 차치하더라도, 아이들이 공과 축구화를 갖고 있어도 뛰어 놀 축구장, 운동장이 없어 주말마다 길거리를 맴돌고 있는 모습, 우리나라의 수준은 딱 이 정도다. 아무리 성공적으로 월드컵을 개최하고 막대한 유치 이익을 얻고 해외에서 찬사를 받으면 뭣 하나, 정작 자국의 국민들은 축구장의 잔디 한 번 밟지 못할 뿐인데 말이다.

월드컵 유치한다고 한들, 올림픽 유치한다고 한들, 또 월드컵과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단이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한들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정작 우리나라 국민들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체육시설과 커뮤니티는 너무나도 열악할 뿐인데 말이다.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 딱 한 가지 부러웠던 것이 있었다. 잘 보존된 그들의 문화유산? 아니었다. 바로 도시 곳곳에 있었던 잔디 운동장이었다. 기차를 타고 창 밖을 보면,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이 나오고 어김없이 그 마을에는 교회가 있었고 이어 잔디 축구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축구장에서 밤이건 낮이건 사람들은 늘 공을 차고 있었다.

TV를 켜면 나오는 온갖 질병 보험 광고들. 이제는 광고 카피가 절로 외워질 정도다. 이 지겨운 질병 보험 광고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다. 전 국민이 열심히 운동을 해서 건강을 관리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육시설이 필요하다. 올림픽 유치하고, 월드컵 유치해서 얻는 막대한 규모의 흑자 이익, 홍보 효과 물론 좋다. 하지만 이보다 국민 모두가 체육시설을 즐김으로써 얻는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굳이 질병발생에 따른 여러 가지 손익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월드컵 유치하기 위해 새로 경기장 짓고, 도로 깔고, 선수촌 아파트 지을 비용으로 동네 자그마한 축구장 하나 더 짓는 것이 우선 아닐까.

얼마 전 당선된 조중연 회장을 중심으로 새롭게 꾸려지고 있는 대한축구협회의 발상에 대한 방향이 참 아쉽다. 아직도 반 세기 전의 국위선양 스포츠, 성과주의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하다. 월드컵 한 번 더 유치한다고 해서 스포츠 강국, 축구 강국이 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 모두가 언제 어디서나 스포츠를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질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스포츠 강국이 되는 것이다.

 

나는 비록 어렸을 적 공을 차고 뛰어 놀 운동장이 없어 친구들과 거리를 맴돌았지만 미래의 나, 그리고 내 친구들의 아들들이 우리가 겪었던 똑같은 서러움을 또 다시 겪게 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너무도 먼 미래 같지만, 아직도 월드컵 개최 같은 꿈이나 꾸고 있는 일부 '윗사람'들의 생각을 보니 내 걱정이 그리 성급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