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스타 좀 하는가?"
"네, 장인어른. 가끔씩 즐겨 합니다."
"오, 그래? 자네는 무슨 종족으로 하는가?"
"저는 저그를 주로 합니다."
"나는 테란인데, 재밌겠구먼. 지금 한 판 해볼까? 허허"

가까운 미래, 한 장인과 사위의 대화를 상상해보았다. 웃긴 상상이다. 처가에 인사드리러 간 사위가 장인과 스타크래프트 게임이라니.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마냥 허무맹랑한 상상인 것 같지만은 않다. 지금까지의 어른들은 장기나 바둑을 두면서 무료함을 달래기도 하고 친밀감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들, 장기나 바둑보다 컴퓨터 게임을 즐겨 한다. 그리고 이 세대가 어른이 되었을 때 딸이 데려온 사위에게 스타크래프트 한 판 권하는 장면,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십수 년 전, 컴퓨터 게임만을 직업으로 삼고 돈을 버는 '프로게이머' 직업군이 등장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에 비하면 장인과 사위가 바둑이나 장기 대신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상상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이미 스타크래프트를 중심으로 한 e스포츠 산업 규모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2005년 통계로 국내 e스포츠 시장은 e스포츠 전문 채널 매출, 리그 및 대회 매출, 기업 후원금을 합하여 약 400억 원 정도의 매출 규모를 올렸다. 국내 제1의 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프로야구의 시장 규모가 방송광고 수익을 제하고 1600억 원 정도인 것에 비하면 아직 미약한 수준이지만, 2010년에는 1200억 원 정도의 규모로 성장할 것이 예상된다. 프로농구의 시장 규모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더구나 지금의 수익은 유료관람, TV중계 등의 비즈니스 모델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기록이라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은 더욱 기대할 만 하다. 이미 프로구단 수는 12개, 웬만한 프로 스포츠 리그 못지 않다. 더구나 '짠물 경영'으로 유명한 STX나 CJ 등의 기업들이 연 몇 십 억원의 운영비를 감수하면서까지 프로구단을 후원하고 있다는 점은 눈 여겨 볼만 하다.


일반 사람들이 갖고 있는 프로게이머에 대한 이미지들이다. '프로'라는 말처럼 게임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고 실제로 여느 스포츠 선수 못지 않은 억대 연봉을 받고 있지만 이런 부정적 이미지에는 늘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오락이나 컴퓨터 게임은 지금까지 쓸데없는 것, 소모적인 소일거리 등으로 여겨져 왔다. 여러 취미 생활 중에서도 하등에 속했다. 부모들은 방안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자녀들에게 차라리 바깥에 나가 뛰어놀으라고 다그쳤다.


이런 사람들의 눈에 프로게이머란 존재가 '별 같지도 않은 폐인들'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아직까지는 e스포츠를 경험해 본 세대보다 경험해보지 않은 세대의 비중이 더 크고,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게임리그가 활성화된 지도 채 몇 년이 되지 않았다. 대중적 장르라고 하기엔 팬 층도 1,20대로 너무 협소하다. 불황 속에서도 매년 성장세를 지속할 정도로 잠재성을 농후하지만, 아직까지는 엄연한 스포츠의 장르로서, 여가생활의 하나로서 인정받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 일례로, 케이블 방송에서는 쉽게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볼 수 있지만 공중파 방송에서는 게임 중계방송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미래에는 어떨까? 쉽게 바둑을 생각해보자. 지금은 오락이나 컴퓨타 게임이 등장해서 젊은층이 이탈해 나갔지만, 그래도 세대를 불문하고 누구나 즐기던 놀이가 바로 바둑, 장기(서구에서는 체스)였다. 아직도 도심 구석구석에는 기원이 자리잡고 있고, 일간지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바둑 기보가 꾸준히 실리고 있다. 조훈현이나 이창호 같은 기사들은 여느 스포츠 스타에 뒤지지 않을 만큼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국수로서 대우받고 있다.


바둑판과 바둑돌만 있으며 어디서든 바둑을 할 수 있듯 스타크래프트도 컴퓨터와 인터넷만 있으면 게임을 즐길 수 있고, 두 가지 모두 일대일의 대결 형식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더 나아가 게임 시간이 짧고 빨리 끝난다는 점, 일대일 뿐만 아니라 다대다의 대결도 가능하다는 점, 바둑보다 쉽다는 점들을 고려해보면 오히려 스타크래프트가 바둑보다도 놀이문화로서 자리매김할 더 뛰어난 메리트들을 지니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바둑보다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를 즐기는 세대가 많아지면서 머지 않은 훗날에는 기원처럼 PC방에도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들락거리고, 일간지에는 전날의 게임 기록이 실리고, 공중파 방송에서는 축구나 야구 중계하듯 주요 e스포츠 경기를 중계방송 해주는 광경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물론 아직 극복해야 할 과제들은 많다. '게임'하면 으슥한 골목길 구석에 있는 오락실을 떠올리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인식의 변화를 위해서 유명 프로게이머 몇몇이 TV에 출연해서 '저희 고소득층이에요'라고 손을 흔드는 것보다는, 게임이 더 이상 소모적인 오락거리가 아니라 하나의 당당한 산업분야라는 것을 많은 이들에게 직접 보여줄 수 있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제시되어야 한다.


또 개인적 바람이지만, 스타크래프트의 아성을 넘을 수 있는 새로운 국산 게임이 e스포츠를 주도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가 세계 e스포츠 종주국임을 자부하고 있지만 막상 적지 않은 개런티를 지불하면서 다른 나라의 게임으로 내용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 서글프다. 스타크래프트가 정말 완성도 높은 게임임에는 동의하지만 언젠가는 이것을 뛰어넘는 국산 게임이 우리나라 e스포츠의 콘텐츠를 채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