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이는 고등어구이, 막걸리와 부침개, 매콤한 낙지볶음과 돼지불고기 백반, 맛깔스런 녹두전 등 서울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먹자골목 '피맛골'. 조선시대 백성들이 말을 타고 다니던 양반들을 마주칠 때 길에 엎드려 절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종로 뒷골목으로 피해 다녔다고 해서 '피맛골'이라 불리어져 내려왔던 곳이다. 하나둘 옛 자취가 사라져가는 서울의 한복판에서 반세기 전의 구수한 옛 모습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피맛골의 모습과 맛을 느낄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서울시가 종로구 청진지역(종로 1~3가 일대) 정비사업을 시작하면서 피맛골이 철거될 운명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번 정비사업으로 종로 일대에는 피맛골의 오래되고 아기자기한 골목길 대신 20~30층의 고층 빌딩들이 자리하게 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문화 후진국이 아니다. 문화정책 후진국이다.'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문화 관련 정책을 비교하던 한 교수님의 말이 떠올랐다. 그 교수님은 아무런 감각도 상식도 없는 우리나라의 문화 정책들을 강렬하게 비판했다. 무조건 으리으리한 현대식 건물만, 주상복합 빌딩만 지어놓으면 다 되는 줄 아는 우리나라의 도시 사업에 대한 불만이었다. 최대한 옛스런 멋을 보존하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별다른 계획도 없이 무조건 재개발만 선호하는 우리의 저급한 도시 문화는 이제 피맛골마저 위협하고 있다.

서울 도시 내에 최근에 생긴 화려한 번화가와 먹자골목은 많지만 피맛골처럼 과거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곳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커다란 현대식 건물들로 가득 찬 종로 도심 한가운데 이런 아기자기하고 옛스런 골목이 남아있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다. 그곳은 수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화로에 고등어, 삼치를 굽고 철판에 전을 부치고 맷돌에 녹두를 가는 그 모습 그대로다.

조금은 비좁고, 오래되어 보이고, 복잡한 곳이지만 일부 몰지각한 행정가들에게는 이런 골목의 모습이 구수하고 정겹기보다는 그저 낙후된 곳으로밖에 보이지 않나보다.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그들이 상상하는 현대식의 깔끔한 도시, 물론 나쁘지 않다. 하지만 왜 그런 작업을 종로나 피맛골과 같이 소중하기만 한 옛 거리를 파괴하면서까지 진행하는지, 아쉬울 뿐이다.

높은 타워와 화려한 빌딩 숲으로 가득한 두바이, 그곳의 세련되고 현대적인 도시 이미지는 단연 세계 최고라 불릴 만하다. 하지만 전 세계인들이 생각하는 매력적인 도시에는 별로 꼽히지 못한다. 대신 파리, 마드리드, 프라하, 베네치아 같은 도시들이 매번 매력적인 도시로 선정되고 또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들 도시는 두바이와 비교하면 굉장히 낙후되고 불편하고 지저분한 오래된 도시들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누구도 이들 도시보다 두바이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진출처: 일간스포츠)

종로1가 한복판에 서있는 종로타워,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가 이 건물을 지었다느니 건물디자인이 특별하다느니 말이 많지만 사실 이 타워만큼 ‘종로’라는 이미지와 어색한 빌딩도 없다. 인사동, 낙원상가, 종각 등 자잘한 건물들이 즐비한 가운데 홀로 우뚝 솟아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무려 600여 년이라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종로의 한복판을 이 종로타워와 같은 고층빌딩 일색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이야기다. 기존 피맛골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 빌딩 1층에는 전통적인 맛집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지만 사진에서와 같이 고층빌딩 아래 붙어있는 고갈비, 막걸리 집은 왠지 어색하기만 하다.

옛 것은 늘 이렇게 쓸쓸하게 없어져 나가야만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