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때부터 사람은 평등하다는 관념, 사실 관념이라는 말도 과분할 정도로 정말 모든 사람이 평등한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 말이 과연 옳은 것인지 증명할 방법도 없거니와 굳이 증명을 요할 정도로 그럴 듯한 말도 되지 못한다. 그러니 관념보다는 ‘믿음’ 즈음으로 해두자. 어쨌건 이 '믿음'은 그동안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던 불문율이 되어왔다. 이 믿음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곧 오만한 엘리트주의자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이 믿음, 물론 내가 이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여러 의미들 중 한 가지 면만을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믿음에 대해 많은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과연 ‘평등하다’는 말의 의미는 정확히 무엇일까. 소극적인 정의일 수도 있겠지만 한 마디로 사람들 모두 다른 점 없이 같다는 뜻이 아닐까.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든 사람의 능력도, 권리도, 의무도 모두 같다는 뜻이 아닐까.

하지만 실제로 모든 사람은 평등할까. 가진 것 없이 홀로 늙는 노인과 혈기왕성한 젊은이가, 아니면 축구로 성공해서 몇 억의 주급을 받는 박지성 선수와 축구로 대학을 가지 못해 20대를 PC방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내 친구가,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재벌2세와 대학등록금이 없어 자살을 시도하는 학생이 과연 평등할까. 평등은커녕 엇비슷하지도 않은데 단지 맹목적으로 만인은 평등하다는 믿음 아래 개개인을 무책임하게 널부러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란 제도 속에서 누리고 있는 권리들은 과거에는 귀족이나 특권층이 아닌 일반 사람들은 누릴 수 없었던 특권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사람들은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구호 아래 때로는 피를 흘려가면서까지 이러한 특권을 자신들의 권리로 쟁취하려했고 결국 이에 성공했다. 당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모토는 일반인들이 상류층만이 누리던 권리들을 가져오는 데 결정적인 근거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지금 불문율이 되어버린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믿음은 오히려 개인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와 행복을 (표현이 좀 그렇지만) ‘하향평준화’시키고 있는 듯하다. 과거 근대 유럽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란 구호가 평민들의 권리를 상향평준화시켰던 것이라면, 지금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란 말은 정말 만인이 평등하지도 않은데도 마치 평등한 것처럼 혹은 평등하게 만들려 애쓰는 것처럼 여기도록 만들어 실제로 일반인들이 평등하지 못한 세상 때문에 얽매이게 되는 많은 부조리의 제약들이 그 자리에서 늘 맴돌고 반복되도록 하향평준화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말처럼 소극적인 회피가 또 있을까. 만에 하나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말이 태어날 때부터의 평등, 능력의 평등, 인간으로서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한다는 당위적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이라고 한들, 실제 이 진부한 당위에의 불문율이 세상의 명백한 불평들의 부조리로부터 얼마나 적극적으로 그 의무를 다하고 있을까.

먼 옛날, 사람들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일 수밖에 없었던 구호를 외쳤던 것처럼, 언젠가는 우리도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란 믿음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오히려 만일을 ‘조금이라도’ 평등하게 만들 수 있는 더욱 가까운 길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