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완성, 하이힐. 똥 때문에 태어나다.

늘 우아하고 도도한 그만의 자태로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는 하이힐이지만, 하이힐의 유래를 살펴보면 생각보다 그렇게 멋지진 않다. 지금의 위생 관념이 생겨난 것은 19세기 이후 근대. 그 전까지 유럽 도시에서는 웬만한 수도나 하수시설도 찾아볼 수 없었다. 더불어 당시 유럽인들은 화장실을 집 안에 두는 것은 야만스러운 것이라 생각했다. 덕분에 도시의 거리에는 각 가정에서 나온 오물들로 가득했고 시민들은 이런 오물들을 최대한 피해 가기 위해 굽이 높은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베르사이유 궁전에도 화장실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왕족과 귀족들은 궁 밖의 정원에서 일을 치뤄야 했다. 잠깐 더 이야기하자면, 당시 귀족 여인들이 정원에서 일을 보기 위해 가림막으로 썼던 휴대용 파라솔이 양산의 시초였다는 이야기도 있다.(또 각 가정에서 거리로 버려지는 오물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들고 다녔던 것이 파라솔이었다는 설도 있다[각주:1]") 어찌됐건, 왕과 귀족들도 바닥에 버려진 오물을 피하며 걷기 위해 굽이 높은 구두를 신기 시작했고, 굽이 높은 구두는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상상해보라. 굽이 높은 신발로는 길가에 버려진 똥과 오줌을 짓이기고 있으면서 그 위로는 온갖 장식이 된 화려한 드레스와 망토로 한껏 콧대를 치키는 모습을.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질퍽한 오물들과 진동하는 역한 냄새들이 떠오른다. 이에 역시 인간도 한낱 먹고 싸는 동물에 불과하다는 초라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밟고 있는 똥과 오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화려한 패션을 추구하던 귀족들의 지극한 열정(?)에 인간이란 참 대단하고 고차원적인 존재란 사실을 새삼 느끼기도 한다.


왜 유독 빨간 하이힐일까?

소비나 기호가 워낙 다양해진 덕분에 하이힐에도 여러 가지 종류와 색깔이 있지만, 그래도 하이힐이라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깔은 역시 '빨간색'이다. 특유의 여성스러움과 도발적인 색감으로 '빨간 하이힐'은 다른 하이힐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다. 그런데 왜 유독 빨간 하이힐이란 말인가? 단순히 자극적인 색깔이라서? 그 것이 전부는 아니다. 루이 14세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랐던 동생 오를레앙 공작이 있었다.

루이 14세는 동생을 지극히 아꼈는데, 언제부터인가 궁 안에서 동생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동생 오를레앙 공작이 한 푸줏간 집 딸과 눈이 맞아서 남들 모르게 밀애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오를레앙 공은 자신의 구두 굽에 푸줏간의 빨간 핏물을 그대로 묻혀온 채 궁 안을 돌아다니는 일이 많았는데, 이로 인해 그는 귀족들의 원성을 샀다.

그러자 동생에게 지극했던 루이 14세는 귀족들의 험담으로부터 동생을 지켜내기 위해 궁 안의 모든 귀족들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린다. "앞으로 궁에서는 반드시 빨간색 힐을 신고 다닐 것". 이후 루이 14세나 귀족은 물론 궁 안의 사람들은 모두 빨간색으로 칠해진 굽을 신어야만 했고, 이로 인해 오를레앙 공에 대한 염문설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프랑스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최신 패션 유행에 민감했던지, 베르사이유 궁의 빨간 하이힐은 일반 시민들에게도 전해져 당시부터 빨간색 힐을 신고 다니는 유행이 널리 번졌다고 한다.

한 마디로 빨간 하이힐은 루이 14세의 동생 오를레앙 공과 한 푸줏간 여인의 스캔들로 태어난 것이다. 실제로 루이 14세 이후의 왕족과 귀족들의 초상화나 그림을 살펴보면 거의 모든 그림에서 '빨간 하이힐'의 시초를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신은 신발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외 없이 굽 부분은 빨간색으로 칠해져있을 것이다. 17세기~18세기의 초상화에서 빨간 굽을 찾는 것도 그림을 보는 한 가지 재미가 될 수 있다.

루이 14세의 초상화. 동그라미 부분에 빨간 굽을 볼 수 있다.


루이 14세 때 그려진 그림. 역시 사람들 모두 빨간 굽을 신고 있다.




  1. "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 中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