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건축을 좋아했던 독재자들의 생리, 그리고 현 정권과 4대강 사업

웅대한 건축물을 만든 건 독재자

위대한 건축물은 독재자 덕분에 지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집트의 웅장한 피라미드는 고대 파라오에 의해 지어졌고,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은 세계사상 최고의 권력을 누리던 진시황에 의해 지어졌으며, 태양왕이라 군림하며 절대 왕정을 이끌었던 루이 14세는 세계 최고의 왕궁이라 불리는 베르사유 궁전을 만들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독재자라 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흥선대원군 이하응. 조선 말,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그의 권세는 지금의 경복궁을 중건시켰다. 사실 임진왜란 당시 불탄 경복궁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랜 시간 재건되지 못하고 있었다. 많은 비용과 인력이 드는 사업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조정과 백성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섭정 시절 끝내 경복궁 중건을 완성했다. 당시의 경복궁은 지금보다 엄청난 규모였다. 지금의 경복궁이 일제와 한국전쟁을 겪은 탓에 대원군 시절 경복궁의 10분의 1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건축의 관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들이 들어서는 곳은 대부분 독재정권이나 권위주의 국가들이다. 중국과 러시아, 옛 소련 연방들 그리고 오일 머니가 넘쳐나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리 민주적이지 않은 중동 산유국들이다. 중국의 상하이, 과연 이곳이 중국이란 나라가 맞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휘황찬란한 대규모 건물들이 즐비해있다. 현 정권이 벤치마킹을 아끼지 않는 UAE의 두바이 또한 마찬가지다. 얼마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버즈 두바이'가 개장할 정도로 세계 유수의 건설사들이 앞다투어 화려한 건물을 뽐내고 있다. 또 과거 구소련 연방이었던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도 희한한 모양의 대규모 건물들이 속속 지어지고 있다. 유수의 건설사들에게 중동 산유국이나 구소련 연방국가들은 별천지나 다름없다. 아무런 규제도 제제도 받지 않은 채 저마다의 화려한 건설기술을 뽐내고 있다.

권력과 건축의 야합

권력과 건축의 야합 생리는 가히 천부적이다. 권력 입장에서는 웅대한 건축물만큼 자신들의 업적을 치장할 만한 게 없다. 법? 이념? 제도? 다 좋지만, 후세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은 결국 위대한 건축물 뿐이다. 동물들이 새끼를 낳아 세상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는 것처럼 권력가도 건설이나 건축 사업을 통해 자신의 위업을 남긴다. 이왕이면 평범한 건축물보다는 크고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을 원한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세와 명예를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것들은 권력가 자신만이 아니라 그 국가나 사회의 상징이나 위상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건축의 입장에서도 권력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큰 기회가 없다. 권력에 의해서라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은 채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투자할 수 있게 된다. 건축가들이 평소 꿈꿔오던 이상적인 건축물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나폴레옹 밑에는 파리를 정비했던 건축가 오스망이 있었고, 히틀러 밑에는 베를린을 로마로 만들려던 건축가 슈페어가 있었다.

소외되는 민주절차와 시민들

문제는 권력과 건축이 합심하여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소외될 수밖에 없는 민주적 절차나 고통 받게 되는 우리네 같은 일반인들이다. 이와 연관하여 세계 유수의 건축물들이 권위주의 국가에서 지어지고 있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들 국가에서는 권력으로부터 건축 과정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은 건축가가 반대 여론에 간섭받고 제한 받을 여지가 하나도 없다. 반면, 민주적인 국가에서의 대규모 건축은 공청회, 환경 평가, 지역사회, 언론 등을 모두 상대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법적인 규제 또한 만만치 않다. 건설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도 우리 일반인들의 몫이나 다름없다. 독재권력이 대규모 토목 건축을 진행시킬 때마다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매번 일반 시민들이었다. 역사적으로 세기의 건축물들이 하나 같이 독재자의 손길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4대강 사업


현 정권이 강행하고자 하는 4대강 사업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건설회사 최고경영자 출신 현직 대통령은 어리석게도 권위주의 시절의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역사도 친환경도 없는 청계천처럼 보이는 게 전부인 업적이라도 남기고 싶었는지, 아니면 엄청난 우려 속에서도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여 찬사를 받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광이 욕심나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보여주고 있는 4대강 사업에 대한 집착은 만리장성을 쌓았던 진시황 못지 않다. 덕분에 제대로 된 공청회나 토론, 환경 심사가 진행되었을 리는 만무하다. '속도전'이라는 북한 사회주의 정권으로부터 유래된 용어까지 마음대로 써가면서 대규모 토목 건설에 대한 민주적 검증 절차는 모두 졸속으로 처리하고 말았다. 공청회나 국회 법안 처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낙동강에서는 이미 포크레인이 삽질을 시작하고 있었다니 말은 다한 셈이다.

무시되는 민주적 절차

4대강 사업이 그대로 진행될 경우 그 여파는 물 보듯 뻔하다. 막대한 사업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여타의 예산들이 삭감됨으로써 정작 고통 받게 될 이들은 이 비용을 충당하는 서민들일 것이다. 실제로 정부여당이 4대강 사업 재정을 끌어오기 위해 비정규직이나 일자리 창출에 관한 예산을 대폭 삭감한 사실은 벌써부터 많은 이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무엇보다 두려운 사실은 막상 공사가 진행될 경우 사업 비용이 얼마가 더 들어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환경오염도 심각한 문제다. 애초부터 강행된 속도전 와중에 환경 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졌을리 없었다. 환경오염을 우려하는 학계나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는 일방적으로 묵살되고 말았다. 이 외에도 거주민들에 대한 공청회나 공식적인 토론회가 졸속으로 진행된 모습은 우리나라가 과연 민주국가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대통령이 자랑하는 '불도저'란 별명처럼 밀어붙이기 식의 사업 진행은 사회주의 국가 중국 못지 않다. 현 정권에게 '민주적 절차'란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일 뿐이었다.

투기자본

과거 왕이나 독재자들이 대규모 건축물을 건설했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웅대한 건축물을 짓는 것은 투기자본이다. 뉴욕의 대표 건물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완공 초기에는 '엠프티(empty) 스테이트 빌딩'이란 오명이 붙을 정도로 입주자들이 적었다. 투기자본이 시장 수요와 상관없이 지었던 빌딩이었기 때문이었다(결국 그 투기자본은 대공황 때 파산했다). 우리 주변에 지어지고 있는 신新 역사나 대규모 복합쇼핑몰을 짓는 것도 대부분 투기자본이다. 신문에 실리는 이들의 입주 광고는 이제 낯설지도 않다. 이번 4대강 사업으로 이익을 챙기는 것도 결국 국내 투기자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조상 대대로 땅을 지켜왔던 거주민들은 푼돈에 쫓겨나가는 대신 그 자리에 들어서는 복합레저단지나 휴양단지들이 4대강 사업의 경제적 효과를 독점하는 것이다. 또 투기자본에 의해 거품이 발생할 것은 뻔하다. 세종시의 경우에서도 드러났 듯이 정부와 유착된 일부 대기업들이 4대강 유역 개발을 앞두고 모종의 거래가 오고 갈 가능성도 크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오래된 진리처럼 결국 일반 시민들은 또 다시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