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인기 연예인의 결혼식을 공중파 TV로 생중계한다. 그깟 연예인의 결혼식 생방송 누가 볼까 하겠지만 유명 연예인의 결혼식일 경우 TV 시청률이 무려 50%에 육박한다고 한다. 절반이 넘는 일본 시청자가 실시간으로 결혼식 생방송을 지켜봤다는 이야기다. 우리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연예계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큰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한류 스타의 현지 팬미팅이 TV에 생중계되는 일도 많았다. 그만큼 일본에서 배우나 가수 등 연예인의 인기나 위상은 가히 엄청나다. TV나 신문 등 각 매체들에서도 연예인에 대한 기사와 보도는 정치나 경제 섹션 못지않을 정도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처럼 일본은 연예인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가 높기로 유명한 나라다. 심하게 말하자면 일본 사람들은 연예인에 죽고 못 산다.

일본은 보수적인 정치 경향으로도 유명하다. 최근 민주당의 약세가 두드러지긴 했지만, ‘58년 체제’란 말처럼 1958년 이후 지금까지 일본 정계를 주도해온 정치세력은 보수우파인 자민당이었다. 견제세력인 민주당이 있었긴 했지만, 58년 이후 여당인 자민당과 야권세력인 민주당의 의석 수 비율은 대략 4:1 정도였다. 양당체제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자민당의 일방적인 독주가 지속되었다. 덕분에 일본의 정치적 경향은 전후 지금까지 꾸준히 우경화로 굳어졌으며, 근 반 세기 동안 지속된 일당독주체제는 파벌, 계파정치나 관치정치, 부패 등 엄청난 정치적 부작용을 발생시켰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미국에 다음가는 부유한 국가로 손꼽히는 나라지만 매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정계의 수구적인 경향 탓에 항상 ‘경제력만큼 정치의식이 성숙되지 못한 나라’라는 국제적인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정치 수준 평가에 대해서는 대게의 국민들이 매우 짠 점수를 줄 정도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정치로 인해 많은 몸살을 앓고 있지만, 일본도 정치에 대한 속앓이는 우리나라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못한 나라는 아니다.

연예계 소식과 뉴스로 점령당한 언론 매체들과 ‘58년 체제’는 절대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일본 자민당은 장기집권에 성공하면서 자신들에게 친화적인 언론 환경을 만들어놓았다. 일반 지면 신문사들을 자신의 편으로 포섭했다. 우리나라의 ‘조중동’과 같이 일본의 자민당과 보수 언론과의 야합은 지금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부분이다. 텔레비전 방송도 자민당 입맛대로 마음껏 주무르기 시작했다. 특히 연예와 스포츠 관련 프로그램의 비중을 늘렸다. 정권에 우호적인 보도를 늘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보다 효과적인 것은 시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전두환 정권이 하던 3S 정책과 유사한 정책이 일본에서는 우리보다 몇 십 년 전에 먼저 시행되었다. 우민화정책에 있어서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얼리어답터였던 셈이다. 일본 대중문화는 연예계에 대한 콘텐츠들로 좌지우지되기에 이르렀고, 덕분에 일본 사람들의 정치 관심도는 꾸준히 하락했다. 일본 사람들은 자민당이 독주를 하든 무엇을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모닝구 무스메나 하마사키 아유미에 있었다.

노자는 백성이 정치에 무관심할수록 좋은 것이라 말했지만, 이 말은 수천 년 전 군주제에서나 어울릴 법한 이야기지 절대 지금의 민주주의 제도에까지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한 자신을 보며 ‘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야’라고 자답하겠지만, 사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현 보수정치세력에게 보이지 않는 지지표를 던지는 행위나 다름없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주권이 ‘민’, 즉 모든 국민들에게 있는 정치제도다. 그만큼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활발한 참여와 관심을 필요로 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사회는 시민들의 건강한 견제와 비판에서 활력을 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은 이미 권력을 쥐고 있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함부로 내맡기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을 보라. 사람들이 TV 속 연예인들에 열광하는 사이, 자민당 정권은 나라를 마음대로 주물렀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젊은이들은 활기를 잃은 채 히키코모리로 전락했다. 그토록 자부하던 경제마저 끝없는 침체기로 빠져들었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탄생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더 이상 신문과 방송 같이 권력과 자본으로 점철된 일방적 매체가 아니라 개개인이 서로의 목소리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기대였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처음과는 많이 달라져있다. 인터넷이란 공간은 여전히 권력과 상업성에 잠식된 일부 포털들로 독점되어있다. 이들이 쏟아내는 많은 콘텐츠들은 대부분 질 낮고 자극적인 정보들뿐이고, 실시간 검색어들은 연예 관련 키워드로 도배되어있다. TV도 마찬가지다. 요즘 시청률 좀 나오는 프로그램들, 대부분 연예인에 대한 신변잡기를 기반으로 한 내용들이다. TV가 있는 안방을 나서서도 어딜 가나 사람들 대화의 화두는 유명 연예인이나 인기 드라마에 대한 것들뿐이다. 이러는 와중에 우리는 역사에서 가장 높이 평가될 두 대통령을 잃었고, 현 정권은 언론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한강과 낙동강의 삽질이 시작되었고, 보수정치세력과 재벌들 간의 새로운 정경유착이 진행되었다

정치라는 것은 생각보다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정치란 분야는 우리 머리 위에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먹고사는 삶과 바로 직결되어 있는 문제다. 우리라고 일본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가 무관심한 사이, 보수정권이 장기집권하지 말라는 법이 없고, 우리 스스로 우민화되어버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 날로 줄어드는 비판의식, 고발성 시사프로그램들, 시사 블로거들, 반대로 날로 늘어나는 연예 기사들, 가수 팬클럽들, 스포츠 신문들을 보고 있으면 답답할 때가 많다. 물론 이들이 우리의 삶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영위하는 개개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은 현 보수 세력에게 보이지 않는 지지표를 던져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바로 ‘우리’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