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경찰인 펜싱 선수?

지난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인가 컬링 중계방송을 보다가 해설자로부터 한 컬링 선수의 직업이 의사란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적이 있다. 선수가 의사라는 직업을 따로 갖고 있다니, 국가대표 선수라 하면 매일 같이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는 직업 선수를 떠올리는 우리들로서는 굉장히 낯선 이야기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을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선수들은 따로 본업을 갖고 올림픽에 출전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베이징 올림픽 결승에서 남현희 선수를 무찌르고 금메달을 딴 여자 펜싱 선수 베잘리도 자국 이탈리아에서는 직업 경찰로 근무하고 있고, 유도 결승에서 최민호 선수에게 패를 당하고도 다정한 포옹을 나눠 주목을 받았던 '훈남' 유도 선수 파이셔도 오스트리아의 직업 군인이다. 

올림픽 정신

본래 올림픽에는 아마추어 선수들만이 참가할 수 있었다. 단, 여기서 말하는 프로와 아마추어란 흔히 말하는 수준의 높고 낮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돈을 받는 직업이냐 아니면 순수한 취미이냐에 따라 나뉘는 사전적 의미에서의 프로, 아마추어의 구분을 뜻한다. 어찌 됐건, 초기 올림픽에서는 대회 상금을 받거나 특정한 팀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의 출전이 철저히 금지되었다. 프로 선수들의 참가는 올림픽의 주요 정신인 아마추어 정신을 위배하는 셈이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올림픽은 사회인 스포츠의 장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명맥이 이어져 내려오면서 상당 수의 선수들이 사회인으로 올림픽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올림픽은 우승 상금이 없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 대회이다).

냉전과 메달 순위

미국, 러시아(구 소련), 중국, 독일,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이들 나라의 공통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이들이 모두 20세기 냉전을 치른 당사자들이란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 모두 올림픽 메달 순위에서 항상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냉전과 메달 순위, 이 두 가지 공통점을 과연 우연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올림픽에서 非 아마추어 선수들의 참가가 도드라진 것은 20세기 중반 냉전이 본격화되면서였다. 올림픽이란 축제가 전 세계 사회인들의 스포츠 제전에서 강대국들간의 국력 대결의 장으로 변모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엘리트 체육인들을 양성하기 위해 태릉선수촌이 설립되어졌고 학원 체육 또한 엘리트 선수를 발굴하기 위한 기반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전반적인 체육 기반이 사회 체육보다는 엘리트 체육을 지향하고 있는 기형적인 구조가 만들어져버린 것이다.

냉전의 유물, 엘리트 체육

문제는 이 때 만들어진 우리나라 체육계의 기형적인 구조가 냉전이 종식된 지금까지도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 영화 '우생순'과 '킹콩을 들다'의 소재가 되고 있는 핸드볼이나 역도 또한 이 때 우리나라에 도입되어진 종목들이다. 일부에서는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비인기종목이라 안쓰런 표정을 짓고 있지만, 본래가 사회 체육보다는 국위선양을 위한 엘리트 체육을 기반으로 자리잡은 스포츠였기 때문에 대중들의 관심을 갖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결국 이로 인해 피를 보는 것은 어렸을 적부터 엘리트 학원 체육에 의해 양성되어진 비인기종목의 선수들이다. 이들은 사회 체육인들과 달리 운동 외엔 변변한 직업도 없다. 오로지 인생의 대부분 핸드볼만을, 역도만을 바라봐온 전업 선수들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메달 보상금을 통해 이들 중 국가대표 마크를 다는 극소수는 그나마 나름대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비인기종목 선수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려운 생활을 전전하고 있다.

비인기종목 없애버리자

이럴 바에는 비인기종목이 굳이 비인기종목으로 남아야 할 필요가 있는지 묻고 싶다. 차라리 올림픽에서 메달 몇 개 못따더라도 국가 주도의 엘리트 체육에 의한 폐해를 줄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올림픽 메달 획득 소식에 환호하고, '우생순'이나 '킹콩을 들다'를 보며 동정어린 눈물을 흘리는 바로 이 시간에도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수백, 수천 명의 어린 학생들의 운동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실패한 체육인의 길을 걸으려 하고 있다. 일회적인 관심으로 비인기종목의 명맥을 유지시켜나가는 것보다는 아예 엘리트 체육 자체를 뒤집어 엎는 것이 오히려 그들과 미래의 선수들에게도 나은 판단이 되지 않을까. 비인기종목 말고도 우리에게는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너무도 많다. 동네 이웃들과 배드민턴이나 탁구를 칠 수도 있고, 야구장이나 축구장을 찾아 박진감 넘치는 프로 경기를 관람할 수도 있다. 공원에서 농구를 할 수도 있고 산에서 산악자전거를 즐길 수도 있다. 굳이 비인기종목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도, 관심을 가져달라 부르짖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끝으로

잘 살기로 유명한 국가들, 이를테면 북구 국가들, 이들의 올림픽 선수단 규모나 성적은 의외로 초라하다. 하지만 이들이 돈이 없어서 혹은 능력이 안 되서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거나 성적이 뛰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올림픽 성적은 우리에 비해 크게 뒤쳐질지 몰라도 우리보다 훨씬 다양하고 양질의 스포츠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 올림픽을 축제 자체로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번 벤쿠버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정상을 휩쓸고 있는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이지만, 정작 이 두 종목 모두 올림픽 기간 외에는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지 못하는 비인기종목들이다. 과거 다른 본업을 갖고 있던 외국의 양궁 선수가 한국 양궁 선수들이 모두 전업 선수라는 사실에 놀라서 자신 또한 한국으로 귀화해 양궁 선수라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선수를 직업으로 삼을 정도면 한국에서 양궁의 인기가 정말 대단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선수는 이내 우리나라에서 양궁이 인기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인기도 없는데 어떻게 직업을 갖는 게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체육계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는 씁쓸한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