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의 한일 평가전 일정이 잡혔다. 평소 같았으면 한일 라이벌 매치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들떠있을텐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무엇보다 시기가 애매하다. 한일전이 잡힌 날짜는 5월 24일, 6월 개막될 남아공 월드컵을 문전에 둔 시기다. 원래의 일정대로라면 오스트리아로 이동해 고지대 적응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스페인과 같은 강팀과의 맞춤 평가전이 몇 차례 잡혀있기 때문에 빡빡한 일정이 예상된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가 본선에서 만나는 팀들(그리스, 나이지리아, 아르헨티나)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일본과, 그것도 일본까지 건너가서 경기를 한다는 것은 좀 뜬금없다.

일본 축구대표팀의 팀컬러를 고려해볼 때, 5월 24일 벌어질 한일 평가전은 우리에게 아무런 영양가가 없는 경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거기다가 홈도 아닌 일본에서 경기를 한다는 것은 빠듯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대표팀에게 더욱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리한 경기 일정은 선수들의 부상을 유발하기 쉽다. 이번 한일 평가전이 안 하니만 못한 경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하다 못해 나 같은 일개 축구팬도 아는 사실인데, 대체 축구협회나 대표팀은 왜 한일 평가전 일정을 잡은 것일까?


아마 정치적 판단이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갑자기 축구대표팀에 웬 정치가 나오나 하겠지만, 우리나라 축구계의 이끌어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국내 축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축구협회의 수장이 바로 정몽준이라는 사실은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5월 24일 한일 평가전 하루 전인 23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년이 되는 날이다. 또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6월 2일은 전국 지방선거가 열리는 날이다. 이쯤 되면 솔솔 냄새가 풍겨온다.

정몽준 대표가 정치적 기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에는 축구의 힘이 매우 컸다. 2002년 그가 대선후보로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성공적 월드컵 개최와 4강 진출이라는 성과에 힘 입은 면이 많았다. 비록 결과는 안 좋았지만 당시 만들어진 정치적 입지로 현재는 한나라당의 당수까지 올라설 수 있었다. 이런 그에게 이번 월드컵은 놓칠 수 없는 기회일 것이다. 가뜩이나 지금은 박근혜 전 대표와 차기 대권을 경쟁하고 있는 상황. 이번 지방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현 당 대표로 있는 정몽준의 입지도 더욱 탄탄해질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든 이번 월드컵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축구에 대한 열기로 돌리고 그 열기를 자연스럽게 지방선거로 이어가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무엇보다 '한일전'은 모든 스포츠 경기 중 국민들의 관심이 가장 큰 이벤트다. 다른 나라와의 경기는 몰라도 한일전만큼은 전 국민 누구나 관심을 갖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년이라는 정치적 사안과 지방선거가 맞물리는 민감한 시기, 월드컵과 축구를 통해 스포츠쇼비니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폭제로는 최고의 아이템인 것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평가전 하나 잡는 것 뿐인데 뭘 그리 비약적인 시각을 갖냐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축구협회는 정몽준 대표의 개인 사조직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정몽준 한 개인에게 전권이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현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조중연이지만 그도 사실 정몽준 대표가 앉혀놓은 꼭두각시에 불과하단 사실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또한 외국 대표팀과의 친선 경기도 대부분 정몽준 대표의 FIFA 활동으로 친분이 있는 해외 인사와의 접촉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축구 대표팀의 뜬금 없는 한일전 일정 발표를 그저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만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