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요? 물론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자연법이자 사형법 논쟁에 있어 가장 밑바탕이 되는 대전제이죠. 그런데 우리는 '사형'이라는 형벌로 사람을 죽여왔습니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는 사법부 스스로가 사람을 죽이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 살인범은 사람을 죽인 사람이기 때문에 죽임을 당해도 된다." 한 마디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겁니다. 살인이라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스스로 그 예외를 인정하고 있는 셈이지요.

바로 이 점이 사형제의 맹점입니다. 만약 자신의 생명을 포기한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이 사람은 남이 자기를 죽여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사형제가 존속된다면, 이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라는 원칙이 통할 수가 없게 됩니다. 끔찍한 비유지만 이미 자신의 생명을 포기한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죽여도 별 문제가 없게 되는 것이죠. 자신도 사형으로 죽음을 당하면 그만이니까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역논리가 가능해지는 것이 사형제 사회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사형제의 대전제가 스스로 모순을 안게 되는 셈이이죠.

하지만 사형제가 폐지된 사회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대전제가 온전하게 작동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는 사형제와는 반대로 그 어떤 살인도 있을 수 없는 일이 됩니다. '너 죽고 나 죽자' 혹은 '너 죽고 나는 살자' 둘 중 어느 경우에도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이죠.

'인권'은 그냥 권리들하고는 많이 다른 개념입니다. 인권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리, 누려야 하는 권리 중 가장 최소한의 것들을 가리킵니다. 절대 인권이라는 말과 권리라는 말을 같은 것으로 등치시켜선 안 되죠. 인권과 권리가 상충할 때 우선되어져야 할 것은 당연히 인권입니다. 권리라는 것은 없어도 무방하겠지만 인권이라는 건 너무나 절박한 것들이니까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살인범을 보며 분노할 권리 혹은 복수를 요구할 권리가 있을지 몰라도 이것으로 살인범의 인권인 생명을 함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인권을 무시한 자이기 때문에 그 자의 인권 또한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이를 반박하는 논리는 앞선 문단에서 고스란히 반복됩니다.

사형제가 범죄율을 낮춘다는 이야기 또한 설득력이 낮습니다. 세상에서 자신의 범죄가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날 것이라는 예상 아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배고픈 '장발장'밖에 없습니다. 살인이건 강도건 사기이건 모든 범죄는 들키지 않으리라는 전제 아래 자행됩니다. 대체 어떤 사람이 사법부에 체포될 일을 미리 염두해 두면서 범죄를 저지른단 말입니까. 마찬가지로 희대의 살인마들도 모두 경찰에 붙잡히지 않으려는 치밀한 계획 아래 살인을 저질러왔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사형제의 유무가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사형이 무서워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요? 그들은 그들이 붙잡힐 것이라는 생각마저 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백 번 양보를 해서, 사형제가 필요하다고 가정해보죠. 하지만 여전히 사형을 함부로 집행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완벽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인간은 신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존재죠. 때문에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나 법 또한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이 만들어낸 법 절차를 통해 세운 판단 또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건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죠. 판결에도 실수가 없으리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사형은 특징상 판결이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이를 환원할 수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는 것은 불가능하죠. 억울하게 사형을 받는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형이 옳다고 한 들, 이를 함부로 집행할 수 없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