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의 조용한 새벽, 두 팔을 머리 위로 들고 상하로 흔들며 경건하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4번째 골을 성공시킨 리오넬 메시를 경배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누캄프 관중들에게는 익숙한 종교 의식. 교회의 신자들이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심정, 절을 찾은 보살님이 정성스레 합장하는 마음처럼, 나도 말이 안 되는 플레이를 현실로 만들어버리는 메시에게 경도되고야 말았다.

아스날의 벤트너가 선제골을 성공시키며 경기의 흐름이 의외로 아스날 쪽으로 기우는가 싶었지만 역시나 바르샤에게는 그가 있었다. 순식간에 전반에만 3골을 몰아치며 아스날을 잠재워버렸다. 그의 빠르면서도 치명적인 움직임에 아스날 수비수들은 그야말로 눈 뜬 장님이 되었다. 특히 문전 앞 혼전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골대를 보고 골키퍼 다리 사이로 4번째 골을 만드는 모습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을 정도. 아스날의 골키퍼였던 알무니아도 그저 멍하니 메시의 세레모니를 바라볼 뿐이었다.

복싱에서도 같은 손, 같은 유형의 선수끼리 만났을 때, 즉 오른손잡이 인파이터들끼리의 대결이나 왼손잡이 아웃복서들끼리의 대결에서 불꽃 튀는 정면전이 펼쳐지는 것처럼 바르샤와 아스날의 경기는 지구에서 가장 아름답고 섬세한 축구를 펼치는 두 팀이 직접 우열을 가리는 한판 승부였다. 이 날 누캄프는 총과 포탄이 빗발치는 치열하고 살벌한 전쟁터이기보다는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가 누가 더 아름다운지 연기를 펼치는 아름다운 은반에 가까웠다.


스포츠에서 스타일이 다른 두 팀이 만났을 때 그 경기의 내용은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서로 다른 스타일 때문에 온갖 변수들이 생길 수도 있고 서로의 장점을 살려 팽팽한 경기가 펼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스타일이 같은 두 팀이 진검승부를 했을 경우 나오게 되는 결과의 가지수는 딱 한 가지 뿐이다. 승패가 철저하게 갈리는 것. 축구와 같이 여러 명이 뛰는 구기종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아스날보다는 바르샤가 확실히 우월했다. 바르샤는 거의 모든 면에서 아스날을 압도했다. 쉴틈 없이 돌아다니는 간결한 패스, 공을 뺏기지 않는 개인 능력, 결정적인 마무리까지. 평소에는 아스날 선수들 자신이 이런 플레이의 주인공들이었지만 이 날 경기에서만큼은 그저 관전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바르샤 선수들은 아스날 선수들보다 한층 더 우아하고 한층 더 세밀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더욱 이 경기가 빛났던 것은 정면승부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벵거와 괴르디올라 두 감독들 때문이었다. 마치 서부영화에서 두 총잡이가 꼼수를 쓰지 않고 끝까지 정정당당하게 대결을 펼치듯, 두 감독 또한 1차전과 2차전 약 200여 분의 시간 동안 고집스럽게 정면승부만을 택했다. 벵거는 원정에서 선취골을 넣었음에도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고, 괴르디올라도 4:0으로 이미 기울어진 전세에도 불구하고 종료 직전까지 또 골을 노렸다. 올시즌 가장 아름다웠던 대결.

재밌는 것은 4강에서 바르샤가 맞붙어야 할 상대가 무리뉴의 인테르라는 점. 괴르디올라가 '즐기는' 축구의 일인자라면 무리뉴는 '이기는' 축구의 일인자다. 바르샤가 어떤 축구를 구사할지는 뻔하다. 4강전에서도 분명 화려하고 섬세한 공격 축구를 할 것이다. 문제는 그 어떤 감독보다도 이기는 법을 잘 아는 무리뉴가 바르샤를 어떻게 막아내느냐다. 무리뉴가 지금까지 바르샤를 상대로 거둔 성적은 2승3무3패. 정반대의 스타일을 가진 바르샤와 인테르의 경기는 바르샤와 아스날의 경기처럼 우아하고 멋진 경기보다는 살벌하고 치열한 경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기는 축구'와 '즐기는 축구', 둘 중 누가 베르나베우로 갈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