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지금의 경남 창원시 백월산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라는 우애 깊은 두 청년이 살고 있었다. 두 청년은 속세를 초월하는 높은 생각을 갖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백월산에서 수양을 했다. 노힐부득은 백월산 동쪽 고개에 승방을 짓고 공부를 하고, 달달박박은 산 북쪽에 사자암을 차지하여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날이 저물어 어둑한데 스무 살 정도 됨직한 아름다운 낭자가 그윽한 향내를 풍기면서 달달박박이 기거하는 암자에 나타나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했다. 이에 달달박박은 "사찰은 깨끗해야 하니 그대가 올 곳이 아니오, 사찰 동쪽에 암자가 있으니 찾아가보시든지 하시오"라고 그 청을 단 번에 거절했다.

그러자 낭자는 노힐부득이 공부하던 동쪽 암자에 찾아가 자고 가기를 간청했다. 그러자 노힐부득은 "이곳은 여자와 같이 있을 곳이 아니지만 중생의 뜻을 따르는 것도 보살의 길일텐데 어찌 늦은 밤 깊은 산골짜기에 내칠 수 있겠소"하며 낭자를 암자 안으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노힐부득은 염불을 외우며 마저 하던 공부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낭자는 목욕하기를 청했다. 이에 노힐부득은 가여운 생각이 들어 목욕통을 준비하여 낭자를 앉히고 따뜻한 물을 끓여주었다.

그런데 얼마 후 목욕통의 물이 금물로 변했고, 낭자는 노힐부득에게 "스님도 여기서 목욕하십시오"라고 청했다. 노힐부득은 마지못해 그 말에 따라 금물로 목욕을 했더니 정신이 상쾌해지면서 큰 깨우침을 얻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노힐부득을 찾아왔던 낭자는 관세음보살이었고 노힐부득은 그녀의 도움으로 깨우침을 얻은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달달박박은 낭자가 노힐부득에게 갔는지 궁금하여 노힐부득의 암자를 찾았는데 이미 노힐부득은 미륵부처의 형상을 하고 금빛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에 달달박박은 절을 하며 자초지정을 물었고, 노힐부득은 밤 사이의 일을 설명하며 달달박박에게 남은 목욕물로 목욕을 할 것을 권했다. 이에 달달박박도 목욕통에 들어가 금물로 목욕을 했더니 역시 깨달음을 얻고 미륵부처가 되었다.
중도라는 것은 마치 라면을 끓이는 것과 같다. 라면을 어떻게 끓여야 하는 지에 대한 일률적인 정답은 없다. 하지만 라면을 끓일 때는 물의 양을 잘 조절해서 간을 맞춰야 하고 끓이는 시간을 잘 조절해서 면도 적당히 익도록 해야 하며, 때로는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국물을 짜게 끓일 수도 있어야 하고 면이 불어터지게 할 수도 있어야 맛있는 라면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말이 쉽지 실제로 라면을 끓여보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은 모두가 경험해본 일.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중도'라는 말을 갖다붙인 탓에 그 의미가 약간은 퇴색되어 버린 감이 있지만, 원래 '중도'라는 말 혹은 동서양에서 말하는 '중용'이라는 말은 이처럼 행하기 어렵고 굉장히 넓은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 말이다.

위의 이야기에서 노힐부득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 또한 바로 이 중도를 취할 수 있었기 때문. 어쩌면 진정한 수양의 자세는 달달박박에 가까웠을 테지만, 노힐부득에게는 달달박박과 달리 깊은 산 속에서 홀로 수양하는 처지였지만 처자의 상황 또한 딱하게 여길 줄 아는 유연하고도 넓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불교는 차안에서 피안으로 향한다. 차안은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세상이며, 피안은 고통이 없는 깨달음의 세계이다. '승乘'은 차안에서 피안으로 가는 수레와 같다.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는 바로 이 수레에 중생을 포함한 다수의 사람들을 태울 것이냐 혹은 깊은 공부를 마친 소수의 승려만을 태울 것이냐에 따라 갈라지게 된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노힐부득은 밤 사이 거처를 구하는 처자를 잘 보살핀 덕분에 관세음보살로부터 직접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달달박박 또한 결국에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점. 하지만 달달박박이 해탈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스스로의 깊은 공부 덕분이기보다는 노힐부득의 도움 덕분이었다. 결국 달달박박 또한 노힐부득의 '보살의 길'로 인해 구제되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