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부모는 아이에게 매를 들고, 부모의 매는 아이에게 아픈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그 상처는 아이에게 기억으로 남겨지고 그 기억은 아이의 경험세계를 이루게 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매를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에게 아픈 기억을 남겨주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아이가 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이는 그렇게 성장한다.

니체처럼 역사를 선적인 일련의 흐름으로 바라보는 고전적인 시각을 거부하는 입장도 있다. 이들에게 역사는 '영원회귀'와 같다. 바로 지금/여기에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들에게도 기억이란 건 여전히 커다란 역할을 한다. '차이와 반복'에서의 들뢰즈에 의하면 수백 년 전의 프랑스 대혁명은 매년 혁명 기념일마다 다시 반복되고 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때의 반복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앞선 반복과 끊임없이 '차이'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 물론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결국에는 앞선 기억을 어떻게 응축시키고 드러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반 세기 전 당시의 참상을 여과 없이 되도록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당시의 건물, 가스실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그곳에 수용되었던 수감자들의 소지품과 흔적들 또한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가스실에 들어가 내가 바로 발을 딛고 있는 바로 이곳에서 수십 년 전 수감자들이 죽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 끔찍한 현장감에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울러 더욱 놀랐던 것은 바로 그 끔찍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유태인 학생들이 단체 견학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현지인들의 말을 들어보니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우리나라 중고생들이 꼭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는 것처럼 유태인은 물론 유럽 학생들의 견학 코스로 빠지지 않는 장소라는 것이다. 동양에서 날아온 나의 눈에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충격적이었던 그곳을 한창 나이의 청소년들이, 바로 그곳에서 죽임을 당한 할아버지 세대에 대한 남겨진 기억을 보고 느끼는 것이었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지만 독일에 그보다 더 규모가 큰 유태인 포로 수용소가 보존,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디카우, 부헨발트, 작센하우젠 등 독일 내에 위치했던 포로 수용소가 대부분 나치 독일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사람들에게 개방되어져 있다. 독일 사람들 바로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과 치부를 자신의 땅에서 버젓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식민 통치와 한국전쟁 등 여느 나라 못지 않게 격동의 근대를 보낸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친일파 청산, 일본군 위안부, 양민학살 사건 등의 문제에서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는 과거의 기억을 감추기에만 급급할 뿐 되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이들 하나 하나가 우리 사회의 소중한 경험이자 '채찍'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만 부끄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작년 <한겨레21>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남산 르네상스'를 집중 취재한 바 있다. 서울시의 남산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일제시대와 군부독재 시절의 역사가 담긴 남산의 공간들이 모두 사라질 위기에 처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남산은 우리 근대사의 보고라 할 만큼 많은 역사적 공간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딱 100년 전 이완용을 비롯한 여덟 명의 대신이 한일합방 조약에 서명을 했던 일제 총독부 관저가 있던 터부터 지금의 남산 식물원에 위치했던 조선신궁, 독재정권 시절 악명 높았던 안기부 건물들까지.

모두 우리 사회의 근대사를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공간들이지만 '남산 르네상스'의 역사문화유산 사업에는 포함되지 않았다(역사문화유산 사업에는 한성 성곽 복원만 있을 뿐이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이 '남산 르네상스'의 목표는 한국의 전통적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세계적인 산책로, 한국식 정원 조성에 따른 서울의 경쟁력 향상과 관광객의 볼거리 제공. 물론 이와 같은 서울의 브랜드 향상과 경제적 효과도 물론 좋지만 남산에 남아있는 역사적 공간들이 간직하고 있는 근대사의 아픈 기억은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할 우리 사회의 소중한 경험이자 자산이다.

'남산 르네상스'에서의 '르네상스'란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 인간 문화의 재생과 같은 것들이 아닌가? 역사를 담고 있는 건물들이야말로 르네상스란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들이 아니던가.






아픈 과거를 감추려하는 얇팍한 의식은 이미 우리 주변의 소중한 공간들을 하나둘 지워버렸다. 유럽의 유태인 포로수용소 못지 않게 비참한 참상을 겪어야 했던 거제도 포로수용소. 한국전쟁과 분단의 쓰디쓴 기억을 간직한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이었지만 지금의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 '공원'에서 과거의 포로수용소의 흔적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단지 새롭게 들어선 박물관 개념의 건물과 당시의 참상을 부드럽게 미화시킨 작은 인형들만이 전시되어 있을 뿐이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철거된 조선총독부 청사 또한 안타깝게 사라져간 유적 중 하나이다. 왕궁의 정면을 가로막고 있는 조선총독부 청사의 철거 및 경복궁 복원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사업임이 분명했지만 청사 건물을 단순히 철거시켜버린 점은 큰 아쉬움이 남는다.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다른 장소에 해체 복원시켜야 했다. 그나마 보존되었던 중앙돔의 첨탑이 호국적 성격이 짙은 용산 전쟁기념관 안에 있는 것도 아이러니한 사실. 청사 건물을 다른 장소에 복원시켜 식민통치의 기억을 담고 있는 다른 역사적 자료들과 함께 전시시켜 놓았다면 단순히 청사 건물을 부숴지는 모습을 보며 느꼈던 후련함보다 더욱 의미 있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경제대국이다. 또 미국 다음으로 UN 기부금을 많이 내는 나라다. 하지만 국제 질서 하에서의 일본의 위상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막강한 국력과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국제적 위상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본 스스로가 국격을 높이지 못한 데 이유가 있다. 총리가 무릎을 꿇고 눈물로 과거를 뉘우쳤던 독일과는 달리 일본은 아직도 전범국가로서의 반성을 회피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과거의 잘못을 전혀 뉘우치지 않는 일본의 성숙하지 못한 태도를 비판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또한 일본 못지 않게 과거의 기억을 싫어한다. 부끄러운 과거의 기억을 말이다. 애써 과거를 감추고 그 흔적을 지우려 하고 있다. 과거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에 손가락질을 하면서 정작 그 자신 또한 일본과 똑같이 과거를 지우고 숨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