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vin Carter
1994

식량 보급소까지 걸어갈 힘조차 없어 주저 앉아버린 수단의 소녀,
그 소녀가 죽어가기를 숨죽여 기다리는 독수리 한 마리,
셔터를 누른 사진 기자,

이 사진 만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보도 사진은 없는 듯 하다.


1. 인간이란 존재

사진 속 인간의 위치는 한낱 독수리의 밥일 뿐이다. 여기서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느니 현존재이라느니 하는 말들은 무의미하다. 인간들은 자기 자신들을, 즉 인간 전체를 뭔가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싶어하지만, 사진처럼 인간은 독수리의 먹잇감에 불과한 나약한 동물일 뿐이다. 단지 도구를 잘 사용할 줄 알기에 천적의 위험으로부터 잠깐이나마 벗어나 있던 것이지 본연의 모습을 한 인간對자연의 관계는 들짐승에 쫓겨다녔던 원시인들이나 지금의 인간이나 별다를 것이 없다.


2. 사진기자 비판할 수 있을까?

사진 밖 이야기는 더욱 극적이다. 이 사진을 찍은 기자 카터는 사진을 찍고 정확히 3년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람들로부터 먼저 독수리를 쫓아내 아이를 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호된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주위의 이야기에 따르면 카터는 자살 전까지 아이를 먼저 구하지 않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괴로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카터가 사진을 찍기 전에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독수리를 먼저 쫓아냈다면, 보도 사진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꼽히는 이 사진은 지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사진을 보고 느낀 바를 포스팅하는 것처럼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진을 통해 갖게 된 느낌이나 생각, 깨달음 또한 없었을 것이다.

역사는 곧 기록이고, 기록은 곧 역사나 다름없다. 기록은 중요한 행위이자 결과물이다. 기록이 남아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역사와 선사가 구분된다. 사진이라는 것 또한 당시에 대한 일종의 기록이다. 찍는 자의 시각이라는 것이 없진 않지만 그 장면 자체를 설정하지 않는 이상 보도 사진과 같은 날것 그대로의 사진은 그 순간을 담아둔 영상기록물인 것이다. 

종군기자들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휘짚고 다니는 것도 사진을 통해 역사의 한 장면을 남기기 위해서다. 전쟁터에서 사람이 죽어가건 학살이 일어나건 종군 기자들은 관여하지 않는다. 전쟁하는 자들에 대해 혹은 전쟁 자체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지도 않는다. 단지 전쟁의 생생한 모습을 필름에 담을 뿐이다. 그것이 역사의 기록자로서 그들에게 부여된 역할이기 때문이다.

카터도 기록자로서의 역할을 해냈을 뿐이다. 주저앉은 흑인 소녀와 이를 주시하는 독수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고 기록했을 뿐이다. 덕분에 후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사진 한 장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종군기자들이 전쟁을 말리지 않는다고 해서 혹은 전쟁 중 일어나는 학살을 말리지 않는다고 해서 비판 받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카터에게도 함부로 돌을 던져서는 안 된다. 그는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사진 작가가 아니었다. 그는 사진 기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