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보며 눈물을 글썽거리기는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었다. 좋아하던 선수가 은퇴하는 모습을 보며 서운했던 적은 많았지만 궁상 맞게 눈물을 글썽인 적인 처음이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후 관중석에 펼쳐진 '영원히 사랑한다 이영표, 박지성' 플랜카드가 카메라에 잡히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울컥했다. 이제는 더 이상 붉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는 그의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새삼 그의 은퇴가 실감 났다. 떠오를 때가 있다면 지는 때가 있고 지는 때가 있으면 다시금 새로이 떠오르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지만 이번만큼은 너무 아쉽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축구 선수, 이영표.

그동안 대표팀의 왼쪽 라인을 책임졌던 그가 우즈베키스탄과의 카타르 아시안컵 3-4위전을 끝으로 국가대표를 은퇴했다. 그는 2000년 프로축구 안양 LG(지금의 FC서울)에 입단했다. A매치 데뷔는 1999년 6월 12일 잠실에서 열린 코리아컵 멕시코와의 경기였으며, A매치 통산 기록은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까지 모두 127경기에 출전해 5골을 기록했다. 한국 선수로는 홍명보(136경기), 이운재(132경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A매치 출전 기록이다.

2000년대 초반에는 대표팀에서 '좌영표-우진섭' 라인이 대세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쓰리백을 쓰던 대표팀에게 명석한 두뇌와 왕성한 활동량, 거기에 공격수 출신답게 날카로운 공격성까지 겸비한 이영표는 '윙백' 포지션에 최적화된 선수나 다름없었다. 특히 그의 강점은 그 어떤 선수보다 높은 축구 아이큐를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항상 상대의 약점을 이용할 줄 알았고, 상대를 속이는 페인팅 기술에 능했다. 때문에 이영표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유럽 선수들도 그의 페인팅과 속임수에 픽픽 중심을 잃고 헤매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기술적으로 거의 완성형에 가깝던 선수였고, 간간히 보여주는 현란한 개인기는 나를 열광시켰다. 무엇보다 꾸준한 선수였고, 박지성과 같은 다른 유럽파 공격수들만큼 언론의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타고난 능력만큼은 국내외적으로 입증이 끝난 실력파 선수였다. PSV아이트호벤, 토트넘, 도르트문트 등 유럽 각국의 명문 클럽에서 활약했고, 늘 다른 구단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아왔다. AS로마의 적극적인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이유로 이적 제의를 거절했던 배짱 넘치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재능 있는 선수는 열심히 뛰는 선수를 이길 수 없고, 열심히 뛰는 선수는 즐기는 선수를 이길 수 없다." 무엇보다 그는 즐길 줄 아는 선수였다. 화려한 페인팅 기술로 상대를 농락했다. 헛다리 짚기로 상대의 균형을 잃게 만든다거나 얄밉게 수비수 다리 사이로 공을 치고 나갔다. 앙리, 카푸, 호날두 등 시대를 대표하는 엄청난 선수들과의 맞대결에서도 결코 주눅들거나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타고난 측면 수비수였다. 악착 같이 달라붙어 상대를 괴롭혔다. 악마와도 같았다. 끈질기고 강한 압박에 그와 마딱뜨리는 상대는 누구든 짜증을 내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이 모든 것을 즐기는 듯 보였다. '초롱이', '꾀돌이' 등 다른 별명도 많지만 이영표에게는 축구계의 '사디스트'란 별명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끊임없이 상대를 괴롭히며 즐거움을 얻는 '사디스트' 말이다.

국가대표를 은퇴한 것이지 선수 생활을 그만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은퇴 후 진로에 대해서는 아직 불분명하다. 많은 이들은 10여 년 동안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후배 선수들의 본보기가 되었던 만큼 은퇴 후에도 지도자로 변신하여 후배 양성에 힘쓰기를 바라고 있는 반면, 일각에서는 평소 신앙심이 두터웠던 그가 은퇴 후에는 목회자로의 길을 희망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물론 향후 진로는 개인이 결정할 문제이겠지만, 축구팬으로서 그의 성실함, 명석한 두뇌, 인간적인 됨됨이, 유럽 무대에서의 풍부한 경험 등을 미루어볼 때 축구 지도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의 이영표를 발굴한 조광래 감독처럼, 그가 이번에는 감독으로서 그라운드에 만들어내는'머리를 사용하는 축구, 명석한 축구, 즐기는 축구'를 보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한 번은 유럽 프로축구의 경기를 보던 도중 인상 깊은 장면을 보게 되었다. 경기장의 장래 아나운서가 이제는 할아버지가 다 되어서 오랜만에 경기장을 찾은 홈팀의 전설적인 선수를 소개하자 비슷한 연배의 중년 팬들이 담담하게 박수를 치며 그를 맞이하는 장면이었다. 중계 도중 잠깐 지나가는 장면이었지만 나에게는 나이가 지긋이 든 중년 팬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었였지만 그 팬의 가슴 속에 그 선수는 현역 시절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려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 팬은 지난 세월만큼이나 담담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지만 그 표정에는 알 수 없는 뭉클함이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와 같은 팬이 될 수 있을까. 내심 부러웠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나에게도 영원히 가슴에 남길 수 있는 선수가 한 명씩 생기고 있다. 세월이 흘러 언젠가는 나도 나이가 지긋이 들어갈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던 중 다시금 그 선수들을 보게 될 때 나 또한 TV 속 팬처럼 아쉬움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묘한 감정으로 그에게 내 추억을 선사해준 고마움의 박수를 쳐줄 때가 올 것이다. 그 때쯤이면 너무나 훌륭한 모습으로 날 설레고 열광하게 해주었던 이영표 선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