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돌궐

언제부터 우리나라와 터키는 '형제의 나라'가 되었을까? 두 국가는 지리상으로도 무려 만 킬로미터에 이를 정도로 먼 곳에 떨어져 있고, 각각 아시아와 유럽으로 분류되는 대륙도 다르다. 그렇다고 몽고와 우리나라처럼 매우 유사한 인종적 특징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일각에서는 투르크족과 한(韓)족의 뿌리가 같은 우랄 알타이어라는 동일 어족에 속해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이기보다는 학설에 가까울 뿐이고, 투르크인들과 한국인들의 생김새를 비교하더라도 두 민족은 전혀 닮지 않았다. 공통점을 찾아내기에는 투르크인들은 너무나 서양적인 특징을, 한국인들은 너무나 동양적인 특징을 갖고 있을 뿐이다.

투르크 민족의 조상이라는 돌궐족과 고대 한반도의 인연도 그다지 특별하지는 않다. 투르크족이 민족적 기원으로 삼고 있는 고대 돌궐족은 흉노, 유연, 선비, 여진, 거란과 함께 한(漢)족의 변방을 이루던 종족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각각 중앙아시아와 만주 부근을 기반으로 하여 세력을 잡고 있었던 돌궐과 고구려는 중원의 거대한 당 세력에 맞서기 위해 외교적 관계를 가졌을 뿐이다. 또한 기록에는 명료하게 남아있지 않지만 광개토대왕 때와 같이 고구려가 영향력을 사방으로 확장하던 시기 고구려와 돌궐이 여러 차례 충돌했을 것이라는 점은 정설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한국 고대사에서 돌궐족이 갖는 의미는 크지 않다. 

그렇다면 왜 터키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 다음으로 많은 전투병을 파병하면서까지 남한을 도왔던 것이었을까? 단지 같은 우랄 알타이 어족이라는 동질감 때문에? 무려 수천 년 전, 자신들의 조상이었던 돌궐과 고구려인들의 우호관계 때문에?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왜 하필 남한을 도왔던 것일까? 그런 역사적 의리라 하면 오히려 북한이 지리적으로 고구려에 더 가까운 국가가 아니었을까?


터키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배경

답은 20세기 초중반의 터키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터키는 1차대전 당시 패전국이 되었던 악몽 탓에 2차대전 기간 내내 매우 신중하고 소심한 태도를 보여왔다. 독일, 소련, 영국과 프랑스 등 각국의 전략적 조약과 참전 요구를 뿌리치며 중립을 지켰다. 물론 '한물간 제국'이었던 터키군의 전력이 연합국과 추축국의 전세를 단 번에 뒤집을 만큼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다리인 동시에 지중해의 거점, 대소련의 전략적 기지가 될 수 있었던 터키의 지정학적 이점은 각국이 앞다투어 러브콜을 보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독일군의 침공으로 막다른 길에 몰린 스탈린은 터키의 참전을 애타게 요청했지만, 터키는 끝까지 전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1943년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전세를 돌리는데 성공한 소련은 발등의 불이 꺼지자 그동안 자신의 요청을 거절했던 터키에 대한 보복을 감추지 않는다.

소련은 숙원이었던 부동항을 갖기 위해 보스포로스 해협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높이려 했고, 1945년 얄타회담 당시에는 터키의 UN 가입을 거부하면서 종전 후 터키를 가만두지 않을 것임을 표명하기도 했다. 소련의 입장에서 터키는 부동항을 갖기 위해 가장 먼저 거쳐야 할 기점이었으며 중동 이슬람권에 대한 완충지대로도 효용이 높았다. 덕분에 소련은 호시탐탐 터키를 수중에 두려 하고 있었고, 이에 터키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국가들의 지원을 끌어들이려 했으나 이들에게 2차대전 내내 연합국의 참전 요구를 거부했던 터키의 SOS가 곱게 보여질리 없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터키군의 모습.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한반도는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과 서방국가를 위시한 자유진영의 대리전장이 되었다. 터키에게는 그야말로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서방 국가들을 끌어들여 소련을 견제할 필요성이 시급했던 터키는 한국전쟁 참전국 중 미국 다음으로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특히 미국은 터키에게 한국전쟁에 참전하는 조건으로 NATO 가입을 약속했는데, 터키로서는 이 NATO 가입이야말로 단 번에 소련의 위협을 날려버릴 수 있는 기회였다. 결국 터키는 한반도에 상당한 수의 전투병을 파병했고(구체적인 파병 숫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만 있을 뿐이다), 종전 후에도 1개 여단 규모의 병력이 1년 단위 근무로 10여 년이 넘도록 한반도에 주둔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