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인 1899년 5월 4일, 동대문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전차가 개통됩니다. 서대문에서부터 청량리까지의 구간을 운행하였지요. 이 전차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교통수단이었습니다. 그동안 달구지를 타고다녔던 당시 사람들에게 전차는 가히 충격적인 문물이었지요. 서울 시민들은 문명의 이기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하지만 문명이란 건 편리한 만큼 그 대가 또한 혹독했지요.

전차가 개통된지 얼마 안 된 5월 26일, 전차가 정로2가 정류장에 다다를 즈음에 길을 건너던 5살박이 어린 아이가 전차에 치여 죽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우리 역사에 있어서는 최초의 교통사고나 마찬가지였죠. 난생 처음보는 참혹한 광경에 서울 시민들은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차가 사람 잡는다"며 돌을 던졌고 일본인 운전사를 죽여야 한다고 몽둥이를 들었습니다. 놀란 운전수와 차장은 재빨리 도주하여 화를 면했지만 성난 군중들은 전차에 불을 질러 완전히 파괴시키고, 그래도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하자 뒤따라오던 전차까지도 뒤집어 놓고 불을 질렀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전차를 움직이는 발전소까지 물려갔지요. 그러자 발전소에서는 공포를 쏘고 철조망에 전류를 흘려 보내 군중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재밌는 건 이 사건에 대한 정부의 후속 조치였습니다. 정부는 최초의 교통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한성 판윤 이채윤을 해임시켰습니다. 또 경무청 관리들을 문책했지요. 한 마디로 성난 군중의 편을 들어준 것이었습니다. 결국 거센 여론의 반발로 서대문~청량리 구간 전차는 5개월간 운행이 정지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교통사고'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하루에도 수 명의 교통사고 사망자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교통사고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뭐랄까요, '문명의 이기를 위해 불가피한 부분' 정도로 치부한다고 해야 할까요. 비단 교통사고만이 아닙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빠른 속도로 새로운 문물은 우리에게 닥쳐오고, 그만큼 한쪽에서는 백여 년 전 죽은 5살 어린 아이처럼 그 '불가피한 부분'을 겪어야만 하는 희생자들이 사라져가고 있지요.

물론 이들만 생각해서도 안 될 겁니다. 희생자가 생기는 만큼 다른 한쪽에서는 문명의 혜택을 보며 간절한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있을테니 말입니다. 차들이 달리는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는 사람이 있는 반면, 도로 위를 달리는 구급차 덕분에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죠.

결국 우리 인간사라는 것 그리고 문명이라는 건 과거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단지 편리함을 '선택'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발전'이라고 말하기에는 우리가 당연하게 치부하던 '희생자'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지요. 


잡생각이 많이 드네요. 그만큼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놀랍고 착잡한 오늘 저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