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한 해 농사가 풍년인지 아니면 흉년인지는 매우 중대한 문제였다. 고대에는 흉작이 지속되면 신하들이 왕을 탄핵하기도 했고, 풍작이냐 흉작이냐에 따라 한 국가의 흥망성쇠가 좌우되기도 했다. 때문에 왕이 직접 신하들을 거느리고 하늘에 제를 올리는 것이 당시의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이는 농사를 짓는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대게 지주의 땅을 빌어 농사를 짓는 백성들에게는 풍년일수록 본인이 가져갈 수 있는 몫이 많아지기 마련이었다. 반대로 흉년일 경우 그나마 적은 수확량의 대부분을 지주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기근을 버티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농부들은 내심 풍년보다는 흉년이 들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풍년인 해보다 흉년인 해에 농부들의 수입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하면 수확량이 많은 풍년인 해에 더 많은 수입을 얻을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것이 바로 '농부의 역설' 때문이다.


농부의 역설의 핵심은 수요가 비탄력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라는 것은 쌀값이 비싸졌다고 하루에 한 끼를 먹거나, 돈이 많은 부자라고 하루에 다섯 끼를 먹지는 않는다. 쌀이라는 재화는 그 성격상 필수재에 가깝기 때문이다. 쌀뿐만이 아니라 농산물 대부분이 가격이 변화하더라도 그 수요량은 크게 변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가격이 내린다고 해서 갑자기 많은 량을 소비하지도 않으며, 반대로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갑자기 구매를 아예 포기해버리는 재화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 그래프는 비탄력적인 수요인 경우[각주:1], 공급량이 감소하면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기존 E의 균형에서 Q만큼 생산하던 농부였지만, 흉년이 들자 생산량이 Q′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수요가 비탄력적이기 때문에(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은 P에서 P′으로 오르게 되었고 새로운 E′에서 균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각주:2] 결국 수입 감소분(B)보다 수입 증가분(A)이 크기 때문에 농부는 기존의 E보다 새로운 균형인 E′에서 수입이 늘어나게 되었다. 흉년인 경우 농부의 소득이 증가한 것이다.



반대로 공급량이 늘어난 경우 농부는 기존 Q보다 많은 Q′만큼 생산하게 될 것이고, 역시 수요는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생산량이 늘어난 만큼 가격도 하락할 것이고 새로운 E′에서 균형을 이루게 될 것이다. 결국 농부는 A만큼 수입이 감소하고 B만큼 수입이 증가하게 되었는데, 수입 감소분이 수입 증가분보다 크기 때문에 전체적인 농부의 수입은 줄어들게 된다. 즉, 풍년인 해에는 농부의 소득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이 같은 현상 때문에 농산물이 풍작을 이룰 때 농부들은 울상을 짓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수확철만 되면 전국적인 풍작으로 인해 열심히 공들여 키운 작물을 그냥 엎어버리는 농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수확량은 증가했지만 탄력적이지 못한 수요 탓에 작물 가격이 급락해서 작물을 재배하는 것조차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경우가 나오기 때문이다.

  1. 수요가 비탄력적일수록 수요곡선은 수직선에 가까워지고, 반대로 탄력적인 수요인 경우일수록 수요곡선은 수평선에 가까워진다. [본문으로]
  2. 농부의 전체 수입은 가격×수확량(P×Q), 즉 전체 사각형 면적의 넓이가 된다. [본문으로]